거의 다 왔어요, 세바스찬

만테냐에서 드뷔시까지

by 정준호

<무지카 이탈리아나>에서 <라 뮈지크 프랑세즈>로 왔네!

앞선 세 차례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정말 사람이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었는데, 신앙의 힘으로 살아 남았을까? 그렇다면 애초에 화살이 빗겨가게 하면 어땠을까?


많은 성자 성녀의 최후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뿐이다. 그들은 한번에 죽지 않는다. 사도 요한을 기름솥에 앉히고 끓는 기름을 부었지만 죽지 않았다. 레파라타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시대 소녀이다. 15세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는데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를 화형에 처하자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려 불을 껐다. 끓는 역청을 먹였는데도 배교하지 않자 결국 그녀는 참수에 처해진다. 그런데 목이 잘리는 순간 비둘기가 나타나 그녀의 영혼을 하늘에 인도했다고 한다.


왜 이런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는가? 바로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이다. 화살에 맞아 바로 죽었다거나, 끓는 기름에 바로 죽었다면 죽인 자의 잔혹함을 더 부각했을 뿐 지금보다 인상이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나? 그것은 사흘만에 부활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틱한 것이 뭔지 아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신성모독이라 느끼셨다면 송구하다.


BBC는 <리처드 2세>에 원작에는 없는 세바스티아누스의 이미지를 입혔다. 극 초반에 왕은 자신과 연인 사이인 화가에게 성인을 그리게 한다. 마지막에 헨리 4세가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될 때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그리기 위한 복선이다.

내가 캡처한 영상

수많은 화가와 음악가, 영화감독과 안무가가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로 성인을 이용한 데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수준 높은 TV 드라마가 시청자의 지적 허영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드뷔시의 선구적인 작품은 일반인과는 거리가 멀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는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작품의 분위기 탓에 흔히 ‘드뷔시의 <파르지팔>이라 불린다. 드뷔시는 젊은 시절 바이로이트를 찾아 바그너의 작품을 보고 그 신선한 화성에 도취했고, 그 영향을 받은 작품을 썼다. 뒤로 갈수록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의 정치적 갈등은 민족주의를 부추겼고, 드뷔시도 바그너의 패권주의에 적개심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악보마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이반 피셔 지휘, 피에르 오디 연출의 <파르지팔>을 무성의하게 전막 올려버린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 고맙다!

그러나 드뷔시가 바그너를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태생적인 영향력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시동생과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비운의 형수를 그린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어로 번역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나 다름없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가 바이로이트 밖에서 <파르지팔>을 대신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벨기에 플란더런 오페라 발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는 단지 바그너의 그림자 아래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각 장의 전주곡은 그마다 뚜렷한 특징이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마치 할리우드 영화음악과 유사하다. 호쾌한 팡파르는 훨씬 뒤 <벤허>나 <쿠오 바디스>가 그릴 로마 시대를 떠올리게 하고, 허공을 가르는 화살이나 어슴푸레한 환영은 히치콕의 스릴러나 공상과학 영화에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KakaoTalk_20200421_093913736.jpg 1911년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의 이다 루빈스타인

초연 당시 이 작품은 이교도의 동성애와 그리스도교를 접목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서 아도니스 이야기를 빌려왔다. 이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큰 물의를 빚었다. 세바스티아누스를 맡은 이다 루빈스타인은 일찍이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공연에서 전라로 춤을 춰 구설수에 오르내렸기에 이번 작품도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했다. 장 콕토는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는 너무 동양적인 향기가 났고, 너무 강렬했고, 너무 아름다웠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시카>와 <봄의 제전>이 바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드뷔시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와 <유희>는 훨씬 주목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의 대중은 ‘자극’을 원했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콜로세움의 관객이었다.

성 프란체스코 심포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2012년 공연. 아무리 좋다고 정말 너희들끼리만 볼 거냐? 올리질 말던가...

비록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작품의 파장은 잔잔히 멀리까지 퍼져갔다. 실패한 작품의 자양분을 가장 알차게 빨아들인 사람 역시 스트라빈스키였다. 우선 교회를 자극했던 동성애는 <봄의 제전>을 통해 말끔히 걷어냈다. 마찬가지로 초연은 큰 낭패를 봤지만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을 무사히 건졌다. 똑같은 이교도 제전이었지만, 동성애 이미지를 뺀 것만으로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사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그는 1930년대 발레 <페르세포네>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모방한다. 계절의 순환과 생식 섭리를 다룬 이 작품은 <봄의 제전>의 이교도 제식을 그리스 신화에 녹인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대본에 맞춰 역시 이다 루빈스타인이 춤추고 낭송하도록 만든 <페르세포네>는 드뷔시의 몽환적인 음악을 노골적으로 인용한다.


스트라빈스키의 <페르세포네>를 두고 이 시대 최고의 연출자 두 사람이 경쟁한다. 베테랑 피터 셀라스와 새롭게 떠오르는 마이클 커리이다. 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페르세포네>에 캄보디아 전통 무용을 덧입혔다. 저승의 신에게 딸을 빼앗긴 엄마의 노래에 성악가와 똑같은 옷을 입은 무용수의 몸짓을 포개어 슬픔을 배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셀라스와 경쟁하는 <페르세포네>가 2018년 봄 미국 오리건과 시애틀에서 상연되었다. 커리는 자신의 안방 오리건과 시애틀 음악가들을 위해 최신 무대 기술을 선보였다. 커리의 <페르세포네>는 셀라스처럼 페르세포네를 해설자와 가면 쓴 무용수, 이렇게 두 자아로 나누었다. 크레인에 올라탄 무용수가 자유자재로 유영(遊泳)하는 가운데 해설자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앙드레 지드의 대본을 화해시키고자 애쓴다.

이럴 거냐, 시애틀? 코로나에 인심 좀 쓰자!

프라하 방송국 수준도 이 정도이다

드뷔시는 일찍이 1887년 로마에 머물 당시 <선택받은 처녀La demoiselle élue>라는 여성 합창과 독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썼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영시 「축복받은 처녀The blessed damozel」에 붙인 음악이다. 로세티는 탐미주의를 추구하는 라파엘 전파의 대표 시인이자 화가였다. 투명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꿈속인 듯한 합창, 물 흐르는 듯한 짜임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예감케 하며, 그 제재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나 <페르세포네>와 매한가지이다. 그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8AvZBhKkvJPiezG19wWyGK29_qrGLy2BhncUQwtO4pcnqiOfV9dwveoG70Q7fMQA070Zi2_8PYlMA9g4jwXYQs-7qimeDpp31zktDDlD68lTa9WGaoRuvZjZDz7cXDVec6-TdCI 도대체 선택된 자가 왜 이렇게 많은 거냐?
축복받은 처녀
천국 황금 난간 기대어
그녀의 눈
잔잔한 수면보다 깊어
세 송이 백합 들고
일곱 별 머리 꽂은
피아노 반주 원곡으로 다시 한번

드뷔시가 뒷날 할리우드 음악을 들었다면 프랑스 작곡가로서 이룬 선구적인 업적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 신비롭고 특별한 음악의 녹음 그리 많지 않지만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드뷔시가 아끼던 후배 데지레 에밀 엥겔브레슈트의 연주이다. 테스타먼트 1955년 전곡 녹음을 발굴해 내놓았다. 엥겔브레슈트는 1902년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초연을 보고 드뷔시의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1911년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초연 때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그에 따르면 드뷔시는 네 성부 합창을 여러 소그룹으로 나누는 것이 이 곡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남탕 여탕 나누는 대중탕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드뷔시의 생각이었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앤 머리, 나탈리 스튀츠망, 실비아 맥네어 독창으로 이 곡을 녹음했다. 틸슨 토머스는 뒤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불새>, <봄의 제전> 녹음에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의 맥을 잇는 <페르세포네>를 커플링 했다(<페르세포네> 녹음은 <세바스티아누스>보다 더 드물다). 20세기 초 음악 흐름을 정확히 읽은 선곡이다. 내가 아무리 얘기하는 것보다 틸슨 토머스의 평가가 더 솔깃하시겠지!

요약하자면 최고라는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전곡 녹음에 유명 배우들이 해설자로 참여했다. <지지>의 레슬리 카롱이 틸슨 토머스 녹음, <자칼의 날>의 미셸 롱스달, 이들보다 훨씬 유명한 불여우 이자벨 위페르와 이렌 자코브가 이름을 보탰다. 안녕 세바스티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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