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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Jun 30. 2019

제주 N달살이의 N을 12로 맺다.

1년의 제주살이와 도쿄 나들이 후기

새로운 회사로의 출근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영영 끝은 아닐지라도, 첫 제주살이는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12달 내내 주구장창 비행기를  탔지만,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왠지 국제선 정도는 타 줘야 할 것 같았기에 3박 4일 도쿄로 짧은 나들이도 다녀왔다.


여행의 이유 같은 걸 한 마디로 명료하게 일축할 능력은 수중에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의 기분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 역시 본토가 좋다. 한국 음식이 최고다.

공항을 빠져나와 먹는 뜨뜻한 삼계탕 국물에 김치 한 점은 어쩜 이렇게 맛있는가.


이 기분을 느끼려고 매번 짐을 싸서 나갔다 오는 것 같다. 그럼 최고 좋은 곳에 가만히 있으면 될 걸 돈 쓰고 시간 쓰고 가진 체력까지 다 쏟아붓는 짓은 대체 왜 하나. 대일밴드와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가면서까지 두 다리를 움직여서는 온갖 낯섦 사이를 헤쳐 다니는 일 따위를 왜 하나.




그거야 말로 내가 가진 어리석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계속 머물고 있으면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꾸역꾸역 살아진다. 생의 감탄사를 하품이 먹어버린다. 평안한 시간에 잠겨 이대로 지루하게 살다 죽어야 하나 같은 생각 따위가 퐁퐁 튀어나온다. 좋은 곳에 죽 있으면서 좋다는 걸 매일 까먹지 않을 만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이 아직 나에게는 없다. 사실 이런 표현마저 지겹다.


그러니 충분한 현명함을 갖추는 순간 나는 여행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아마 영영 그만두지 못할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 알아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바보 같음이 중요한 키라는 점이다. 나 그래도 한때 일본어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이야! 하던 내가 점원이 하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해 어... 음.... 하고 손가락으로 주문하곤 얼굴이 빨개질 때. 100개가 넘는 지하철역 출구 중에 찾고 있는 출구를 한 번에 찾지 못해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동행인과 티격태격할 때. 그래서 이 입장권으로 여길 갈 수 있는 거야 아닌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연히 들어가게 된 전시에서 마음이 들썩일 때.


그럴 때 여행이 재밌어진다.

신주쿠역 근처 교차로. 모리미술관 전시. 오미쿠지 흉 당첨. 모두 계획에 없던 것들.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음이, 능숙함이 아니라 서투름이, 모든 것을 앎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름이 늘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여행이 삶이라는 것의 메타포라면, 아마 삶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나의 뒤에 숨어서 눈치 보고 있는 잘 모르고, 잘 못하고, 훌륭하지 않은 나에게 못난아 이리 온- 하며 안아주고 싶어 진다.




제주에서 보낸 꼬박 1년이 통째로 그랬던 것 같다. 한껏 바보 같을 수 있었던 7월에서 6월이었고, 그래서 바보 같은 나를 사랑하는 날들이 조금 더 길어졌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지상으로 파라다이스 빔이 자주 비치곤 했다.

밤에도, 낮에도.


지난 350여 간의 날이 나를 있는 힘껏 보살펴 준 덕에, 겨우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침 8시 반 2호선을 다시 탈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출근 결정 취소 취소! 하고 두 손을 들고 싶어 지지만, 어떻게든 해보자고 타협을 마쳤으니 해봐야 한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봤는데도 도저히 안 버텨지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나까지 나를 몰아세우지는 않기로 했으니.


다시는 서울 땅에 발도 안 디딜 것처럼 뛰쳐나갔지만, 여러모로 서울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는 곳인 것만은 확실하다. 돈도,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능력도. 많은 인연들도.


조금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선 필요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이때를 잘 보내면, 이후에는 N의 숫자가 12로 멈추는 대신 무한대가 될 수 있겠지.


가보는 거다. 다음 챕터로.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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