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부서로의 이동은 어제가 될지 알 수 없었고 신입사원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타 부서로의 이동을 위해서라도, 내가 지금 속한 부서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았고,
나라는 직원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은 결국 내가 속한 부서에서 기대하는 performance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업부의 performance는 무엇으로 측정하냐고?
당연히 영업 실적이다. 실적은 단순히 절대 값이 많이 나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되는
'목표'를 달성하는, 혹은 '목표'를 초과하는 실적만이 의미가 있다.
영업부에서 목표 회의를 하는 날은 사뭇 비장하다.
다들 마음속에서는 나는 얼마까지는 절대 목표를 받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출근했을 것 같다.
그날을 어떻게든 소장님께 합리적 호소, 인간적 호소, 감정에의 호소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왜 내가 이 정도만의 목표를 받야아하는지를 설득시키는 날이었다.
그 과정에서 동료 직원으로부터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설령 들을지라도
왜 내가 너무하지 않은지에 대한 답변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얼굴을 붉혀서라도 내 뜻을 관철시킬 것인지 나름대로 마음속 선을 정해 가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아쉬운 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고,
그 과정 속에서는 고리짝 일일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들이 회의실을 채우기도 했다.
'저는 애가 셋이잖아요'
'저 이번에도 평가 잘 못 받으면 만년 과장이에요'
장황하게 적었지만 간단히 말하면, 나는 핑곗거리가 없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아이도 없었고, 이제 막 2년 차였으며 감정에 호소할만한 그럴싸한 이유가 없었다. 내 영업능력이 너무 좋아서 아무리 높은 목표를 받아도 내가 해 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사막에서 온풍기를 팔 정도의 영업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아주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 하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목표 설정 작업을 홀로 한 3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것 같다. 병원별, 고객별 처방 capacity와 처방량을 구해두고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인지와, 현실적으로 내가 노력해서 어디까지는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계산했다.
내가 처음 제안 할 숫자 Best, 소장님이 계속 push 할 때, 조금 올린 So-So안, 진짜 더 이상은 절대 안 된다는 마지노선 안 숫자를 준비하고 나는 2안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치사했다.
만년 차장 닳고 닳은 선배들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강조하며
나에게 목표를 더 가져가라고 거의 협박하듯이 말했다.
서로 수차례 왜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가 합당한 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아마도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지레 겁을 먹고 어느 선에서 물러나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 감정 표현이 얼굴 온도로 드러나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고치려 해도 잘 고쳐지지 않아 화장을 두껍게 해야 할 판이지만...)
"그런데요, 서울대, 아산병원 같이 월 capa 자체가 5000만 원은 되는 곳에서 300만 원 올리는 것과, 제가 담당하는 월 capa 1000만 원짜리 병원에서 300만 원 올리는 것이 같나요?"
흠칫 당황한 얄미운 차장이 말한다.
"야, (그 당시는 야, 너, 이 자식, 이 새끼 등의 호칭이 영업 회의 시간에는 심심치 않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