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라홍 Mar 11. 2024

[1년 차]1.그래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끄적끄적 제약회사 직장인 성장기

의료 파업이 길어지며 이런저런 이유로 이슈가 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에 왈가왈부할 만큼 나는 정치에 관심이 있지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할 만큼 현학적이지도 않다.
다만,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의료계의 다양한 면모를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애환 섞인 에피소드들이 요즘 들어 더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새삼, 10년 전 이 업계에 들어왔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꼬꼬마였던 내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제약 짬밥 10년을 먹었더라.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10년이었지만, 어떤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는지 기록하려 한다.

2014년 3월
온전한 나의 첫 번째 선택, 직장인으로서의 첫걸음.

인턴으로 회사에 있었던 3개월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금은 오만했던 3개월이었다.
같이 있는 동기들보다 내가 훨씬 잘할 거라는 나의 오만함.
매일 보는 시험도, 발표도 내가 더 잘 해낼 거라는 교만함.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랬다.
전공자가 아니지만 틀리지 않으려고 매일 새롭게 배우는 용어며 내용을 암기했고, 시험을 곧잘 봤으며 무엇보다 학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PPT를 만들고 발표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회사 입사를 결정하는 데에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정말 솔직한 그때의 내 심정을 부끄럽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나, 학회에서 활동을 할 때나 나를 짓누르던 것은 경쟁심이었다. 이기고 싶었고, 이기지 못할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꽤나 아팠다.
특목고 입학 이후 줄곧 내 주위를 감쌌던 경쟁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패배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내가 매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부의 인식에서 힘든 업계이긴 하지만, 그만큼 좋은 인재 풀이 제한되어 있는 곳이고, 이 안에서 나의 상대적인 경쟁력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부가적으로 급여가 나쁘지 않고, 휴일이 많고, 이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내가 제일 이 안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입사 후 얼마간은 자신 있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신입사원인 내게 물어봤다.
"전공이 뭐였어요?"
"학교 어디서 다녔어요?"

호구조사와 같은 대화 끝에 대답을 마치고 나면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취업이 정말 힘든가 보네... 아니, 다른 곳도 많은데 왜 여기를 왔어요?"


"외국계 좋지, 좋은 데 왔네."

나는 1번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각오를 말했다.
그때는 정말 패기가 넘쳤나 보다.
"저는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려고요."

11년 전 나는 정말 패기로웠구나. 10년을 보내고 11년을 맞이하는 나는 뱀의 머리가 되고 있는 중일까?

스스로 잘하고 있노라며 나를 다독이는 밤이 있는가 하면, 뱀의 꼬리가 되지 않으려고, 아니 뱀이 탈피하고 버려버리는 표피가 되지 않으려고 아둥바둥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나의 교만함과 오만함을 꾸짖는 날도 있다.

그저, 내 대답을 들었던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