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6. 작두를 타야 맞출 수 있어요.
계절성 있는 제품의 포케스팅
두 번째 회사에서 내가 맡았던 주력 제품은
호흡기 제품으로 만성 질환 제품과는 달리 감기가 유행하면서 폐렴이나 인후염으로 인해 아픈 사람들이 많을수록 매출이 잘 나가는 제품이었다. 따라서 감기가 유행하는 환절기, 겨울철 계절성을 띄었으며 또 유행이 얼마나 크게, 오래가느냐에 따라서 매출이 큰 폭으로 좌지우지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맡았던 제품의 Forecasting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유병율을 기반으로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고, 그 안에서 판매 채널 별,
경쟁품과 시장을 어떻게 나눠먹고 있었는지에 따라 예측이 가능했고 매년 ambition을 담아 작성한
나의 예측치는 월별 variation은 있을지라도
연간으로 보면 실제와 1-2% 이내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 자체가 계절을 띄지 않기 때문에
월별 매출 분석 회의에서도
왜 이런 sales를 보였는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어떤 병원에서
매출이 저조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경쟁품 무엇 때문이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해결 방안을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회사에서 월간 미팅 중
나는 왜 내 제품들의 매출 트렌드가
예년보다 못 한지 혹은 예년을 상회하는지에 대해 나 스스로도 속 시원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세 번째 미팅만에 나는 아무리 봐도 작년만큼 계절성 질환이 유행을 안 하고 있는 이유밖에 찾지 목했는데도 그 이유 이외에도 왜 나의 예측치가 실제와 어긋 낫는지를 억지로 만들어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많이도 까였고,
끝끝내 미팅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라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함께,
'아니, 자기들이 해봐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나. 지적하는 말은 쉽지.'라는
사장 + 한 마디씩 거드는 참석자들에 대한 원망
다른 마케터들은 stable 한 시장 제품을 담당하는지라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
그리고 어느 순간
'제발 감기가 미친 듯이 유행해라'라고 빌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진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담당하는 제품이 더 잘 팔리기 위해 사람들이 더 아프길 바라는 내 마음이 이게 맞는 건가?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섞인 눈물이었다.
내 감정이 어떻든, 월간 미팅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나는 또 하염없이 까일 것이 분명하기에 매 번 나는 나의 최선을 다했다.
계절성을 띄는 제품의 매출을 예측하기 위해서 과거 매출 자료를 기반으로 10년 치, 5년 치, 3년 치 최근 등등 다양한 기간으로 나눠 분석해서 예측도 해보고 , 질병청에 수시로 들어가 어떤 질환이 유행 조짐을 보이는지를 확인하는 등 오만가지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조금 나아질 수는 있어도 여전히 나는 만성질환이나 정신과 질환처럼 stable 한 제품들만큼 예측치의 정확도가 올라가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다른 임원들이나 마케터, 나의 직속상관인 전무님은 내 노력을 알아주고 제품의 특성을 이해했고, +/ - 10% 내외의 수준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사장님이 듣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니, 호흡기 제품들은 왜 이렇게 accuracy가 어느 수준까지 안 올라오지? +/- 5% 내외로 맞출 수 없나?" 라며 그간의 내 모든 노력을 무시하는 듯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이 요동치더니 끝끝내 하고 싶었던 얘기를 시원하게 던졌다.
"사장님, 직접 해 보시면 더 잘 아시겠지만
그 정도는 작두를 타야 합니다! "
사회생활을 하면서 했어야 했는데.. 하는 말이 있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말이 있다.
저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이었지만
내뱉고 나니 후련했다.
나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사장님은 뭐랄까.. 매우 깐족대는 스타일이었고
깊은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이었는데
이 미팅 말고도 다른 미팅에 들어갔다가
사장님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듣고
내가 너무 열이 받아 회의에서 나오자마자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 목이 돌아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으니
저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화병이 나서 쓰러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날은 나 살자고 내 입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뱉어준 거라 치자.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