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각심을 가지자!
첫 회사였던 일본계 회사에 다닐 때는 알지 못했는데,
회사를 옮겨보니 회사마다 업무 스타일이나 분위기라는 게 다르구나.. 싶었다.
일본계는 뭐랄까 좀 더 '한국적'이라고 해야 할지, '가족적'이라고 해야 할지..
위계질서, 연공서열 이런 단어가 매우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내가 근무할 때 초반에는 사장님이 한국 사람이었고 이후에는 일본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반기에 한 번 Brand plan을 임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사장님과 직접 communication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발표를 마치고 질문을 하는 시간에 사장님은 때로는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질문을 했고 그럴 때면 사장님께 잘 보이려는 일본어를 잘하는 임원 분이 비서가 통역을 해주기 전에 자기 멋대로 대답을 해 버려 어떤 질문을 했는지, 대답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알 길이 없는 답답한 장면이 반복되곤 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사장님과 직접 communication을 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 지사의 사장님 뿐 아니라 아시아 퍼시픽 지역의 head (APAC region head)와도 미팅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항상 한국 지사 사람들과의 회의가 주였던 나에게 이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많은 나라들을 관리, 담당하고,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다 보니 의료 시스템에서부터 설명을 해줘야 하는 등 생각보다 광범위한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어느 날, 저녁 9시경 카카오톡으로 모르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Hi"
나는 몇 년 전 다녀왔던 동남아 여행에서 현지 택시 관광을 위해 카카오 친구를 추가했던 기사인가.. 하는 생각으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사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XX, this is Vishal"
한 두 번 미팅 참석자로 이름을 봤던 기억이 있는 APAC Commercial lead였다.
"I down loaded KAKAO for you"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그는 최근에 내가 맡은 Brand의 Planning 자료를 보고 숫자와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나의 전임자가 냈던 숫자와 내 숫자가 어떤 제품에서 얼마큼 차이가 나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단순히 슬라이드에서 따온 숫자가 아니라, reference로 제출한 엑셀 파일에 있는 숫자를 언급했다.
나에게 지금 엑셀 파일을 열 수 있냐고 물어보는 그의 질문에 마침 야근 중이었던 나는
당황하지 않고 파일을 열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인도 사람이었다.
저녁 9시에 외국에 있는 나의 direct 매니저도 아닌 사람이 나를 찾았다는 것.
나와 얘기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깔아 나를 친구추가 했다는 것. (내 핸드폰 번호를 직원 profile에서 찾아... 저장하고 친구 찾기를 한 것일까..? 인도사람이?)
이것 보다도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1년 6개월 전 (전임자의 자료) 자료의 엑셀 파일의 몇 행 몇 열 숫자와 나의 숫자를 디테일하게 비교했다는 것이었다.
한국 지사 나의 line manager도 하지 않는 수준의 디테일한 질문을 인도 사람에게 받고 나니
'와 진짜 작은 것 하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X 될 수도 있겠다'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숫자 하나를 얘기할 때, 수십 번을 점검하고 틀렸는지 아닌지 반복하며 점검하게 되었다.
혹시나 밤에 나에게 걸려올 보이스톡을 피하고 싶었고, 나를 멍청한 한국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했다.
무시무시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에 내가 세 번째 회사에서 겪었던 또 다른 인도 사람과는 비교가 안되게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인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