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존경하게 된다는 것.
첫 번째 회사에서 5년을 일하면서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지한 충고를 들은 적이 없었다.
으레 하는 연말 평가 때 듣는 '왜 너에게 이런 점수를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 말고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을 내가 잘하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었다.
부족한 부분은 차치하고, 잘하는 부분에 대한 칭찬에도 인색한 문화였던 것 같다.
나는 인정욕구가 큰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 칭찬을 해주지 않으니
기를 쓰고 회사에서 분기 혹은 연마다 시상하는 우수사례에 응모하고 수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뭐랄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팀에서 혹은 팀장님이
'쟤는 왜 저렇게 튀어' , ' 지 혼자 잘났구나'라고 나를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혹은 내 라인 매니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 불편한 감정이 어떤 형태로 해소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 것은 두 번째 회사에서
면접 때 나를 뽑은 사람이자 내가 직접 보고를 했던 전무님과의 잊지 못할 대화를 통해서이다.
호재로 만들어야만 했던 경쟁사의 악재를 만나 한참 고통받고 있던 그즈음이었다.
5배 매출 상승이 되었지만 8배 매출 상승이라는 이상이 현실화되지 못한 까닭에 글로벌에 읍소해 받아 온 재고에 대한 고민과 압박으로 매일매일이 괴로운 날들이었다.
전무님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나는 조금 무서웠다.
'아... 내가 잘못해서 밥 먹으면서 혼나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회사 근처 캐주얼한 식당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화 후 전무님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내가 5년 동안 일을 하며 누군가를 '존경'한다,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첫 대상이었으며 11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아마도 내가 스스로 압박감에 못 이겨 일을 하면서 한숨을 쉬어댔던 것 같다.
매일매일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았고 엑셀 화면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숨이 막혔으니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큰 숨을 쉬었는데 나는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전무님도 오며 가며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겉으로 많은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짜증을 내거나 하는 게 아니라, 표정에서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못마땅하면 찡그려지는...
이 부분은 내가 인지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전무님은 나를 잘 관찰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어떤 부분을 잘하고 나를 왜 뽑았으며 실제 일을 해 보니 본인의 생각이 맞았다는 칭찬으로 얘기를 시작하셨다.
"홍 대리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어. 그런데 그 단점은 고치는 것은 정말 어려워. 다만 단점이 장점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해."
"회사 생활 하면서, 항상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어. 나도 속상하고 화가 날 때가 많지만, 진짜 프로는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가면을 썼다고 생각하고 연기의 연장이라고 생각해 봐."
말미에 내가 한숨을 자주 쉰다는 걸 알고 있냐고 물으시면서, 옆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으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대화를 하면서 나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
1. 누군가 1:1로 나를 인정해 주는데서 오는, '인정받았다', '나를 알아준다'는 데서 나의 인정욕구가 엄청나게 충족되었다.
2. 투명하게 내 생각이 드러나는 아마추어 같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3. 듣는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이런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전무님의 대화 방법이 존경스러웠다.
4.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해줄 말을 생각해 왔을 전무님의 아랫사람에 대한 고민에 감동했다.
5. 당장 오늘부터 조언을 실천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6.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