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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Aug 16. 2024

공무원 품위유지위반 feat. 불륜

자네..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진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쫓아오지 않는 남편으로부터 블랙박스 메모리를 든 탈주를 감행하고 그 후에 서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아마 3개월도 더 넘은 시점에 갑자기 전화가 온다. 우스웠다. 자기가 불리해지니 미안한 마음이 생겼나? 옛다 거절.


 밤이 되자 전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카톡도 미친 듯이 왔다. 자기가 너무 미안하니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한다. 아니, 정말... 하루라도 텀을 주지. 새대가리는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갑자기 용서를 구한다. 이건 초등학생들도 쓰지 않는 방법인데.. 이걸 다 큰 성인이 머리라고 쓰고 있다는 것에 환멸이 느껴졌다. 내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니까 갑자기 우리 아빠한테 전화를 한다. 방에 있던 아빠의 전화벨소리를 듣고 내가 받지 말라고 달려감과 동시에 아빠는 모르는 번호라며 거절을 눌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상당히 당황했다.

세상에서 보이스피싱이 제일 두려운 우리 아빠.

멋지다.


그 후에도 계속 전화가 왔다. 차단을 했으면 되는데 그걸 나중에 깨달았다. 아무튼 나는 아빠한테 또 전화를 할까 봐 그리고 아빠가 그게 망나니 사위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걸 받을까 봐.. 참다못해 내가 전화를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 성보라가 있다는 것은 그 아버지가 성동일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 : 왜 자꾸 전화해. 정신병 있니?

남편 : 미안해. 나 지금 너네 집으로 가고 있어.

나 : 어. 돌아가. 경찰 부르기 전에

남편 : 아니 진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나 : 아니 진짜 난 들을 얘기가 없어서 그래

남편 : 내가 너무 미안해서 얼굴 보고 용서를 구하려고 해

나 : 그게 하필 오늘인 이유가 있나? 아! 내가 민원인인데 그거 알았구나?

남편 : 진짜 부탁이야. 한 번만 만나자

나 : 나중에 얘기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꺼져. 유턴을 하든가 확 운전대 꺾어서 그냥 죽어버리든가. 진짜 내 손으로 죽여버리기 전에. 내가 못 할 거 같지?

남편 : 알겠어 돌아갈게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나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구질구질해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말세다. 요즘은 오히려 유책배우자가 역으로 이혼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그걸 방지하고자 너무 가기 싫은 그 집에 몇 번씩 가곤 했다. 내가 남편과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러다 남편과 마주친 날.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값싼 무릎 필요도 없는데) 징계취소? 뭐 이런 걸 해달라고 했다. 그새 다 알아봤나 보다. 기가 막혀서.


나 : 그걸? 왜? 내가 얼마나 공들여 썼는데

남편 : 진짜 염치없는데(없는 걸 알면 보통 이런 말을 안 한다), 나 정말 징계받기 싫어. 그냥 일을 그만둘게. 그럼 되잖아.

나 : 아니 징계를 받으라고. 그 이후에 일을 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고

남편 : 너 내가 전에 얼핏 얘기했던, 내가 진짜 싫어하는 그 권위적인 사람 알지? 그 사람이 징계위원장이야. 그 사람 앞에서 징계받는 건 죽는 거보다 싫어

나 : 그럼 이참에 죽는 건 어때?

남편 : 진짜 제발 한 번만 부탁할게

나 : 아, 근데 그 사람? 어? 나 그 사람한테 편지 쓰고 왔는데?

남편 :.............................?

나 : 나 그 사람한테 편지 썼어. 너네 둘 필벌해 달라고

남편 : 어? 부대에 왔었어? 어떻게 들어왔어?

나 : 프리패스라고 해 그런 걸. 난 민원인이고. 귀순병사도 들어가는 데 나라고 못 들어갈 이유가 있나?

남편 : 아........... 언제?

나 : 너네 둘이 조사받던 바로 그날. 아, 그 군검사 사무실에서 내 향수 냄새 안 났어? 개코라더니.

남편 : 네가 그 사람도 만났다고?

나 : 어. 우리 꽤 친해졌어. 말이 잘 통하더라고

남편 : 와... 편지까지... 너도 대단하다 진짜...

나 : 내가 원래 좀 대단한 여자야. 그래서 네가 날 좋아했던 거고. 내가 항상 너의 편이었을 때 넌 그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어. 그래서 잊어버렸던 거지. 근데 네가 나를 너의 적으로 만들었네. 그러게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평생 너의 편이게 했어야지

남편 :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나 : 안 돼. 앞으로 더한 일도 많을 텐데 그 새가슴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각오 단단히 해. 네가 그토록 좋아했던 대단한 나를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남편 : 너 말하는 거 보니까 취소해 줄 마음이 없네.

나 : 취소할 거면 내가 내 귀한 시간을 왜 냈겠니. 생각을 해봐. 이제 너네 둘 개망신당하는 거 시간문제야.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비밀이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남편은 내가 부대에 출입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고, 이제 부대 사람들이 자기의 본모습을 알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소문은 아마 첫날 많이 났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놈의 화장실 때문에 여자화장실을 찾아서 이 건물 저 건물을 또각거리며 세상 당당하게(마음은 기어 다녀도 워킹은 런웨이처럼) 쏘다녔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의 행동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나를 감시하는 군검사와 둘이서. 사람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이제 두 년놈에게 쏠리겠지. 그리고 내가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다고 한 걸 몹시 궁금해하고 불안해했다. 여기서 말하면 재미없지. 그게 두려워 또 먼저 그만둘 생각을 하는 회피형 인간.

두 년놈은 그 후 여러 번의 조사를 더 받았다.


나에게는 한없이 공감해 주고 밝을 수 없었지만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애쓰셨던 군검사님은(커피도 사주셨다, 좋은 사람) 이 두 사람 앞에서는 굉장히 무섭고 경직된 분위기를 내셨다고 했다(남편피셜).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튼 근무지이탈 건도 있었기 때문에 해명의 자리(?)를 마련했지만 결국 순순히 다 인정을 했고, 특히 상간녀는 거의 시체처럼 왔다고 했다. 나이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군법을 다루는 군인을 ‘징계장교’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도 나름 군인 남편을 뒀던 사람으로 웬만한 군대용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보직이었다. 군인, 군무원들에게

“ooo님. ooo징계장교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곧 그의 인생이 앞으로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평생 듣고 싶지 않은 관등성명이랄까. 그래. 너네 인생은 좀 많이 피곤해질 거야.


 그 둘의 조사가 이루어지던 어느 날, 변호사님께 연락이 왔다.

상간녀 쪽에서 상간소송취소+징계취소를 해주면 합의금 35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단다. 역시 부모님이 아시니 자릿수가 달라진다. 3500만 원? 근데 어림도 없다. 나는 애초에 합의를 해 줄 생각이 없었다. 3500만 원이야 벌면 그만.

나는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길 바란단다. 한 가정을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중한 죄인지, 나에게 이렇게 빅엿을 날린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앞으로 직접 꼭 느끼길 바란단다.


그 후에도 상간녀 아버지로부터 자필편지가 왔는데, 도대체 문맥을 이해할 수가 없는 말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딸이 사회초년생인데 힘들어했다 - 죄송하다 - 자식 관리 잘하겠다.'

로 이어지는 말에서 나는 '사회초년생이 사회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했다.'라는 불필요한 문장을 쓰는 것에 종이와 잉크가 사용됐다는 것에 탄식했다.


음.. 그랬구나~

부대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남자를 만났구나~

보통의 사람들은 일이 힘들면 더 배우기도 바쁜 시간에 어디서도 배워먹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게 그게 방법이었구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걸 견디는데 너는 아니었구나~

혹시 누구한테 얘기하고 싶더라도 그게 가족이나 친구지 다른 부서에 있는 유부남은 아니었을 텐데 넌 참 너답게 유부남에게 정신이 팔렸구나~

아 너희 아버지도 군무원이라더니 똑같은 사람이구나~

역시 콩콩팥팥은 진리구나~

그랬구나.


무한도전의 ‘그랬구나 ‘ 상황극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브런치 스토리에서는 처음 말하는 시모에게서(이제는 남보다 못한 아주머니인) 전화가 온 적이 있다.

그래도 글에서는 예의상 시모라 부르겠다.

아마 본인 아들을 해코지할까 봐 두려워서 나를 달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한 전화였을 것이다.


나 : 무슨 일이시죠?

시모  : oo아.. 네 맘 다 알아 얼마나 힘들겠니... 내가 아들을 잘못 키웠다

나 : 네 잘못 키우셨어요. 그리고 제 마음을 어머니가 어떻게 아세요

시모 : 여자 마음이 다 똑같지 뭐

나 : 아니요. 안 똑같아요. 아버님이 바람피우셨던 거 아니잖아요

시모 : 그 말이 아니잖니

나 : 그니까 함부로 제 마음 안다고 말씀하시 마세요. 괜히 공감하는 척 마시고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시모 : 그럼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나 : 벌을 받아야죠

시모 : 어떤 벌을 원하는데?

나 : oo이(남편)가 직장을 그만둬야죠. 그리고 그 걸레 같은 여자애도요

시모 :  야..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며느리한테 '야'라고 부르는 인성)?

나 : 대체 어떤 부분에서 너무하다고 하시는 거죠?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시모 : 걔 이제 그 직장 겨우 들어갔어. 그거 말고는 할 줄도 모르는 애고

나 : 아니던데요, 여자도 꼬시고 할 거 다 하던데요. 아, 그리고 남편 덕분에 저도 직장 그만뒀으니 같이 그만둬야죠. 이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시모 : oo아.. 너는 능력자잖아. 재주도 많고. 근데 우리 아들은 안 그렇잖아.  

나 :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아무튼 저는 마음 안 바꿔요 어머니

시모 : 우리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면 네 마음이 조금 행복해져?

나 : 행복해지진 않을 거예요

시모 : 근데 왜 그러는 거야?

나 : 같이 불행해지자는 거예요 제가 원하는 건

시모 : 그래 알겠다


나를 살살 달래 보려던 얕은 술수가 먹히지 않자 조금 짜증스러운 듯이 전화를 끊었다.

나도 안다. 결혼 생활에서 내가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며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근데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내가 존중하려야, 존경하려야 할 수 없는 행동들만 하셨다. 그걸 말하기에는 너무 구차하고 에너지 낭비인 거 같아 말은 안 하겠지만 아무튼 살면서 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었다.


2주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말투가 아주 공격적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해놓고 잊어버리는 것은 모전자전이다.


시모 : 이제 슬슬 마음 정리하고 이혼해. 걔는 이미 마음이 떠났어

나 : 그 마음 정리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혼도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마세요. 그리고 저한테 명령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니가 함부로 명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시모 : 이혼 안 한다는 거니?

나 : 법원에 가기도 귀찮은데 어쩌죠? 그리고 제가 왜 해야 하죠?

시모 : 너도 얼른 잊고 새 인생 살아야지

나 : 아니, 제 걱정 안 하시잖아요

시모 : 왜 안 해? 그래도 며느리였는데

나 : 그럼 부적은 뭐예요?

시모 :...................? 부적?

나 : 어머니가 갖다 준 부적이요. 왜 모른 척하세요?

시모 : 그거 그냥 너한테 좋으라고 한 거야

나 : 저 죽으라고 사주하신 거예요?

시모 :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하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좋은 거라고 해서 한 거야

나 : 제가 무속인한테 다 알아봤는데요(이것도 뻥이다)? 그 부적 사진 찍어왔거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시모 : 그거… 그냥 이혼하게 하는 그런 부적이야. 별 거 아니야

나 : 그래서 제가 이혼을 안 하려고요

시모 : 그래서 안 한다고?

나 : 어머니와 어머니 아들이 제일 원하는 거. 그래서 그거 제가 안 한다고요

시모 : 휴.. 너를 어떻게 이기겠니. 그래 네 맘대로 해

나 : 네. 다시는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짓을 할지 저도 몰라요


엄마나 아들이나 횡설수설에 본인들의 미래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모자는 나를 말발로 절대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얼마 뒤, 남편과 다시 만날 일이 있었다.

나는 치킨을 주문하고 굉장히 해맑게 우리가 연애를 할 때처럼 행동했다. 남편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고 날 경계하며 무서워하는 것을 느꼈다. 치킨을 먹고 무슨 데이트를 하듯이 카페로 가서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마치 오래전 우리의 첫 만남처럼.


남편 : 오늘은 왜 온 거야?

나 : 아, 내가 아직 말 안 했구나

남편 : 뭔데? 징계취소 안 해줄 거면서 무슨 말을 더 해?

나 : 내가 진짜 대박 재밌는 소식을 들었잖아. 내가 전에 너한테 알려줄 거 하나 더 있다고 한 거 기억나?

남편 : 재미가 있다고? 뭐가?

나 : 그때 말했던 네가 가장 싫다던 그 징계위원장님 있잖아

남편 : 어

나 : 그분이 나 오래

남편 : 어??? 어디를?

나 : 그분이 나보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해도 된대. 내가 편지 썼다고 했잖아 그게 그 내용이었거든. 내가 그날 부대에 방문하겠다고. 너네 벌 받는 거 보게

남편 : 뭐.............................????!!!!!!!!!!????????


남편의  굵고 까만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파르르 떨리고, 나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은 테이블 위에서 피아노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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