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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Aug 20. 2024

군징계위원회에 출석하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거라

결코 즐겁지 않은 일. 그러나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공개하고 내가 선택했던 남편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일.

가야 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고, 안 갈 수도 있었지만 가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의 의지를, 그들이 얼마큼 중한 죄를 저질렀는지 사람들이 알고 그 두 인원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려면 나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친정으로 돌아오고 나와 아주 친했던 사람들과 의 연락도 다 끊고 지내다가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하게 된 순간,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네 남편, 그리고 그 상간녀... 이제 망했다 진짜. 네가 누군지 몰라도 그렇게 몰랐을 수가 있나? 어떡하냐?"


그러게. 내가 누군지 몰랐나 봐.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야. 이제 알면 되니까.


 *편의상 나의 진술을 들으셨던 군검사님을 군검사님 1이라고 부르고, 오늘 초면인 군검사님을 군검사님 2라고 부르겠다.


진술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징계위원회 날짜가 잡혔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2월의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부대를 찾았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인데 두 번 다 출입카드키가 먹히질 않았고 얼굴만 바뀐 앳된 군인들은 당황했다.

 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추운데 죄송하다고 했고 나는 정말이고 정말이고 괜찮다고 했다.

 이렇게나 살을 에는 듯이 추운 날 얼굴이랑 손이 새빨갛다 못해 검붉어진 채 위병소를, 이곳보다도 훨씬 더 추울 최전방에서도 나라를 지키는 전국의 너무 어린 국군 여러분의 그 꽃 같은 청춘의 희생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카드가 안 먹히는 건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것도 하나 바로바로 조치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의 탓이니까.

 그렇게 뻘쭘하게 남 걱정을 다 하며(내가 원래 내 머리에서 피나는데 남 무릎 까진 거 걱정하는 스타일이다) 부대 앞에서 기다리는데 초면의 군검사님 2 한 분이 나를 데리러 왔다. 참고로 군검사님들은 보통 정장을 입나 보다. 눈에 띄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 안으로 데려갔다.

 아무 말 없이 귀가 깨져버릴 것처럼 부는 추운 바람을 뚫고 오래 걸어서 어떤 건물로 들어갔다.

 시간은 약이 맞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더 추워지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전날, 군검사님 1께서 징계위원회는 오전 10시에 시작될 예정이니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서 기다려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30분 보다도 훨씬 먼저 가서 내가 해야 할 말을 복기하며 대기실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남편-상간녀' 순서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다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가 마주칠까봐 시간 차도 둔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내가 다음 차례인 상간녀를 기다려도 되냐고 여쭤봤기 때문이다.   

 상당히 당황한 군검사님 2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고, 그때부터 군검사님 2는 스트레칭을 하는 척 문 쪽에 있는 소파의 팔걸이 부분에 걸터앉아 있기 시작했다(원래는 소파에 앉아계셨다). 무섭게 했다면 미안해요. 근데 인사하고 싶었던 건 진심이었답니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이었는데 암요.

 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영광이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없었다. 그 죽어가는 꼬라지를 내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


 등장 순서를 좀 섞어서 말하겠다.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2번 타자였던 남편은 그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본인의 잘못을 다 인정했다고 한다. 본인이 먼저 작정하고 미혼인 상간녀를 꼬셨고 그런 관계가 된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잘못이라며 상간녀를 감쌌다고 했다. 아직 그녀와의 결혼에 미련이 있었나 보다. 이 무슨 세기의 사랑인가. 삼류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사랑. 눈물 없이 들어줄 수 없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내가 들었다. 이 정도면 찐사랑이다. 옛다 쓰레기 가져가라.

 듣다 못한 정상인들이 민원인(나)에게는 미안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고 했단다.

응, 안 받아 너의 썩은 사과.

그리고는 모든 벌은 달게 받겠다고 세상 쿨한 척을 하셨다. 밤양갱이냐? 달게 받지 말고 쓰디쓰게 받거라. 자 이제 넌 게라웃. 다음 타자~


 3번 타자 상간녀가 들어왔다.

상간녀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출석한다고 했다. 꼴에 변호할 말이 있나 보다. 그녀는 내내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오열을 하며 죄송하다고 했고 자기도 피해자임을 주장했다. 왜 울었는지 나는 진정으로 궁금하다. 남의 이혼 날짜까지 정해줬고 유부남인걸 알면서도 더러운, 개만도 못한 행동을 한 본인이 피해자란다. 근데 진짜 왜 울었지???


시끄러우니까 그만 울고 내 말을 들어보렴.

너의 눈물을 닦아 준 휴지가 그러는데 너에게 사용되어진 스스로가 비참해서 운대.

그리고 얘야, 벌레인 러브버그도 둘이 눈이 맞고 좋아서 합쳐진 거란다.


 앞뒤가 안 맞는 말만 하니까 아마 변호사가 자청해서 따라붙었을 것이다. 내버려 두면 하는 소리마다 왈왈거릴 것이기에.

 나도 내가 원하면 변호사님과 같이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전에도 말했듯이 말을 참 잘한다. 우리 집 성동일 씨가 내가 말대꾸를 따박따박할 때마다 쟤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거라고 했다. 상대가 누구든 나는 내 할 말이 있으면 세상 똑순이가 된다.

 이제 관건은 어떻게 그들의 감정에 호소할 것인가였다. 눈물이 나와주면 좋으련만...

 이미 마음은 계절처럼 꽁꽁 얼어붙어 눈물을 흘리지 않은지 오래됐다.


 군인에게 시간은 생명이라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열 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겨운 기다림의 시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나에게 또 그 키워드가 등장한다는 것을 말한다. ‘화장실’.  여러분도 물론 염증을 느끼시겠지만 이 몸과 함께 사는 나도 상당히 피곤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니 알아주시라.

 여전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여자화장실을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군검사님 2와 함께. 오늘 처음 본 사이에다가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상태라 저번 군검사님 1에게 했던 칸에 들어오실 거냐는 드립은 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좀 무게감 있고 사연 있게 보여야 한다. 나도 상황을 봐가며 드립을 날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근데 이 사람은 내가 무슨 간첩도 아니고 진짜 화장실 바로 앞까지 따라와서 나를 기다렸다.

동무! 등잔 밑 조심하라우

*간첩신고는 국번 없이 1337


 다시 돌아온 대기실. 군검사님 2와 나는 서로 아무 말 없이 핸드폰만 하고 있었다.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나는 참다 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분도 당황했는지 아마 이전 사건의 징계 결정이 조금 오래 걸리는 거 같다고 하셨다. 도대체 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뭐 때문에 왜 이리 징계를 많이 받는 것인가… 통탄할 일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부르는 사람이 들어왔다.


이제 시작이다. 잘하자!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1번 타자가 세상 우아한 발걸음으로 들어가려는데 녹음 방지를 위해 핸드폰을 다 놓고 들어가란다. 뭔가 일이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스마트워치까지는 빼라고 안 해서 비밀리에 녹음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갑자기 어느 지하실에 끌려가서 물고문을 당하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농담이다. 영화를 너무 봤다.


 다시 또각또각 발걸음을 옮겨 들어가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정말 영화, 드라마에서나 보던 청문회장 같은 회의실(?)이 있었다. 다들 나를 조심스레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쭉 훑어보았다. 군징계위원장님이 긴 테이블의 끝에서 나와 마주 보고 앉았고 가로로 여러 사람들이 섞여 앉아 있었다. 심지어 징계위원장님 자리에는 마이크도 있었다. 그 양 옆으로는 여군무원, 남군무원, 여군, 남군 등이 섞여서 준비하고 있었고 때마침 이 사건을 담당하는 군검사님 1이 인쇄된 파일을 나눠주고 계셨다. 이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다. 그 안에 그들의 추악함이 다 담겨있고, 심지어 상간녀의 속옷, 쓰다 버린 생리대 사진까지 다 내가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따 걔네도 이걸 보게 되겠지.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고 담담하게 대답을 이어갔고 그들이 근무지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 한 번이 아닐 거라는 말도 더했다. 그리고 군검사님 1과의 합작으로 최근 몇 달간의 둘의 당직근무가 매번 겹치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이들은 당직근무를 선 것이 아니라 야밤에 국민들의 혈세로 데이트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둘이 휴가도 나란히 같이 냈었다. 아주 가관이다. 나에게는 일이 너무 바빠서 여름휴가가 없다고 했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은 저들의 데이트 비용을 내기 위해 세금을 낸 것이 아니라 몇달 째 방치 된 출입카드키를 고치라고, 그래서 아무 잘못이 없는 국민의 아들들이 대신 죄송해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내는 것이며 진짜 국민들에게 죄송해야 하는 건 앞으로 나올 두 인원이라는 말도 더 했다.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계속 그 어린 얼굴들이 아른거렸고 마침 세금 얘기가 나와서 꼭 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저기, 아줌마가 그럴 때가 아니라 아줌마 머리에서 피난다고요……..알아요 알아, 닦을게요.)

 다행히 내가 말하는 와중에 여러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어댔다. 부끄러웠을 것이고 저들과 같은 소속이라는 것도 아마 창피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여기서 눈물이 나야 한다. 제발.


"음... 일단 이 자리를 빌려 저의 무례하고 격식 없는 편지에도 흔쾌히 출석을 허락해 주신 징계위원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저도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특히나 이런 민원으로는 더더욱 말입니다. 저도 누구보다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저를 알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두 인원의 용서받지 못할 행동으로 인해 한 사람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는지, 그래서 그들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군의 기강을 얼마나 해치는 일인 지 또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까지 하는데 눈물이 겨우 한 방울 흘렀다. 긴장 상태였어서 그런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도 했다. 내가 옆에 계신 분께(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휴지와 물을 좀 달라고 부탁드렸다. 착하신 분.. 허겁지겁 휴지를 갖다 주시고는 물을 찾는데, 물이 없단다. 그러더니 갑자기 구론산을 갖다 준다. 이거라도 드시라며... 그래도 매너 있게 열어서 주셨다.


징계위원장님 하고 딱 마주 보고 있어 그냥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마실 수가 없었다. 왼쪽 위로 고개를 돌려서 살짝 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마주쳤다. 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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