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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Aug 23. 2024

군징계위원회에서 제일 많이 떠든 민원인

장하다 대한의 딸

 고개를 돌리고 구론산을 이미 한 모금 입에 담았는데 눈이 마주쳤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ㄱ..가…각..각하????

바로 대통령이다.


 나는 정말 진실로 우리나라에도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는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 국군통수권자 대통령.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었을까? 세상 인자한 미소의 대통령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욻" 하고 당황의 웃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뵈옵니다.

징계위원장님(대략 중~대령으로 기억)께 예의를 차리려다가 국군통수권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음료를 마시는 여성이 되었다. 진심으로 입에 있던 구론산을 다 뿜을 뻔 했다. 왜 그렇게 놀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요 각하. 그 뽀샵은 너무하셨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은 이게 웃음인지 기침인지 뭔지 아무도 몰랐다. 워낙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내가.

 그러면서 동시에 구론산이 코를 찡하고 때리는 게 느껴졌다. 더럽게 매웠다. 여러분은 아시는가. 구론산이 코에 있는 맛을. 난 안다. 너무 잘 안다.


 하늘이 도왔다. 역류한 구론산 탓에 눈물이 핑 돌았고, 나는 이때다 싶어 더욱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즙을 짜냈다. 사람들이 날 안쓰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특히 연세가 좀 있으셨던 여군무원님이 나를 유난히 불쌍하게 보셨다. 성공이다.


그때 징계위원장님이 더 할 말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난 아직 더 있다고 했다. 이 여자는 왜 오지 말라는데 여기까지 기어이 와서 이렇게나 많은 말을 하는지 아마 징글징글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 많은 말을 꼭 했어야 했고 그 이유는 이거였다.


"아시다시피, 제 남편이라는 사람은 전직 대위였습니다. 저랑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결혼을 할 때까지도 그 사람은 대한민국 국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신분은 다르지만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의 할아버지께서도 직업군인이셨습니다. 한평생 나라를 위해 일하셨고 그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결정하게 된 것에 남편의 직업도 한몫을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도덕성과 인간성에 결함이 없고 정직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지켰던 나라를 저의 아버지가 지키셨고 그리고 저의 남편이 이어서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께 불철주야로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신뢰를 가지고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길어도 너무 길었다).


 저는 군대를 가까이 혹은 멀리서 보면서 생각보다 청렴하고 투명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저의 일로 다가오니 혹시나 쉬쉬하지 않을까 숨기려고 하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의 뒤에 이어서 나오는 두 인원은 국가의 일을, 그것도 분단된 휴전 국가의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과 함께 일하는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본적인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결여되어도 한참 결여된 인원들이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인의 가정과 본인의 마음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국가도, 그 어떤 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부디 두 인원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려주시어 제가 믿는 대한민국 군대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키는 나라이기도하지만 제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 제가 사랑하는 제 조국이 도덕성이 결여되고 군의 기강을 해치는 인원에게 어떤 벌을 내리는지 제가 두 눈을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면, 저는 장담하건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곳 사단까지 올 수 있었던 저는, 육본(육군본부)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아마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저는 이제 더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말 참 잘했다(Mariposa를 국회로!!!!!!!). 아직까지도 생각 날 정도로 외워서 말했다. 난 저 말을 하면서 눈물을 한 방울도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하는 내내 징계위원장님의 눈을 한 번도 피하지 않고 주시했다. 제발 똑바로 들어달라고.


 징계위원장님은 잘 알겠다고 이제 나가도 좋다고 하셨다. 나오면서 90도 인사를 하고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군검사님 2께서 나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 문을 열어주셨고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세상 차갑게 표정을 바꾸고 어디로 나가면 되냐고 물었다. 아마 군검사님 2는 내가 도도한 척을 하느라 길을 안내하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였겠지만 실제로 워낙 길치 방향치라 문을 열고 닫으면 들어왔던 방향을 전혀 모른다. 군검사님,그때는 진짜 몰라서 여쭤본거였어요. 잘못하면 다시 회의실 문을 열 수도 있는, 제가 그런 사람이랍니다.


 징계위원장님은 이 사안은 절대로 밖으로 결과가 새어나가면 안 된다고 모든 결과는 비밀일 것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어떻게든 알아낼 생각이었다.

 나를 데리러 오셨던 군검사님 2가 다시 칼바람을 뚫고 부대를 빠져나가면서 말을 걸어왔다. 민원인이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걸 처음 본다고 했다. 몹시 궁금한 눈치였다. 나는 바로 말했다.

"아, 제가 지금 상간소송 중이에요ㅎ"

그러자 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예 이 정도면 성공이다.

적재적소에 눈물을 흘렸고 슬쩍 말도 흘려놨다.

나는 이제 집에 돌아가서 징계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변호사님께 징계위원회 얘기를 했고, 결과를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어차피 상간소송에서 다 알게 될 내용이라고 했다. 분명 직장에서의 피해가 있었으니 그걸 이용할 거라며. 그러거나 말거나.


 상간소송의 결과가 어떻든 이미 나의 목표는 이루었다. 그 두 년놈이 본인들과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것, 평생 수군거림 속에 사는 것.


 결과를 말하겠다. 남편은 해임으로 몇 달 후 일을 그만뒀고, 상간녀는 정직 3개월을 받았지만 상고를 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중징계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부대 생활을 하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지. 군무원이 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중징계를 받았던 극악무도하고 더러운 인원.

Adió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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