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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Aug 13. 2024

상간소송과 군징계위원회

얘들아, 재밌었니? 이제 괴로울 시간이야

며칠 후, 상간녀에게 연락이 왔다. 합의금 500을 주겠단다. 수중에 모아놓은 돈이 그거밖에 없고 부모님이 모르신다고 했다.


‘어 괜찮아, 그거 너 쓰고 싶은 데에 쓰고 너희 부모님은 곧 알게 되실 거야. 염려 말거라.’


 상간소송을 하려면 상간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기본으로 알아둬야 한다고 했다. 나는 뭐,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다행히 뻥카가 통했지만 알아두시면 좋겠다. 아니 이걸 아실 일이 없길 바란다.

그러면 정확한 집주소 확인을 위해서 법원에서 통신사에 조회요청을 한다. 통신사에서 거절할 수도 있다고 듣긴 들었는데 그런 경우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짝 문제가 생길 뻔했다. 메인 3사의 통신사가 아닌 경우, 이를테면 메인 3사의 통신망을 쓰는 알뜰폰 업체의 요금제를 사용하게 되면, 조회하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고 했고 그 조회요청도 회사마다 다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듣기만 해도 번거롭고 복잡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찾았다 나의 페르소나. 어디에 사는지 아파트 이름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이제 나는 상간녀의 주민번호와 상세주소까지 알게 되었다. 메인 3사 통신사를 사용 중이었다. 웬 떡이냐.


 아, 그 소송을 하면서 내가 따로 진행한 것이 있다. 도대체 왜 간통법이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민사로만 상간소송이 가능한 건 알고 있었는데, 얘네들이 군무원이라는 직업이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다. 군무원은 '군대의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어쨌든 얘네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내가 징계위원회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 이름하여 '품위유지위반'. 거기에 나는 하나를 더 했다. '일과시간 중 근무지 이탈'. 이런 엄청난 제도가 있다니. 남편이 나에게서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독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까지 시간은 엄청 오래 걸렸다. 나는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내 마음 치유에 힘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본인을 육군본부 소속(?)이라고 밝혔던 그는 내가 넣은 민원 내용을 확인차 연락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왜 이리 오래 걸리냐고. 그러자 민원내용의 중대함과 민원인의 처벌의지가 너무 강해서 본인들도 이걸 육군본부 차원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지, 소속사단에서 열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왜냐면 내가 ‘엄벌탄원서’도 같이 제출했기 때문이다. 뭐가 어찌 됐든 나는 빠른 처리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단 군검사님이라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다. oo, oo 주무관에게 민원을 넣으셨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고, 참고인 조사가 있을 예정인데 대면 조사를 원치 않으시면 유선 상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원치 않을 리가 있나. 친히 부대를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고 굉장히 추웠던 날, 남편과 상간녀가 근무하고 있는 부대로 들어갔다.

‘아~ 여기였구나.’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미리 정보를 전달했던 차량번호와 신분증 확인을 꼼꼼하게 했다. 그럼 뭐 하나. 출입카드키가 작동이 안 돼서 결국 군검사님이 나를 데리러 나오셨다.


 그렇게 군검사님과 함께 사무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고, 진술이 시작됐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말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자랑 맞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참 말을 똑 부러지게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 재능을 여기에서 쓸 줄이야. 아 아직 한번 더 남았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군검사님은 중위였다. 앳된 모습이라 아무 생각 없이 실례가 안 된다면 계급이 어떻게 되냐고 여쭤봤고(정장을 입고 계셨다) 놀란 군검사님은 소개가 늦었다며 중위 ooo라고 대답하셨다. 졸지에 관등성명을 대라고 한 꼰대가 되었다. 나보다 어려서 다행이었다. 내 생각보다 계급이 낮았지만(나는 소령쯤이길 바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얕은 군대 지식으로는 적어도 대대장(중령급) 이상은 되어야 사무실을 제공받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아님 말고) 이 분은 중위였는데도 개인사무실이 있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군검사 직군은 난 잘 모른다.


암튼 그 군검사님이 내가 말하는 것을 거의 속기사급으로 받아 적으면서 그걸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아, 아무나 하는 일이 절대 아니구나. 내가 줄줄줄 말하면 그걸 요약해서 받아 적고는, 이렇게  쓰면 될까요? 하는데 그렇게 쓰는 게 딱 내가 원하는 거였다. 군검사님도 본인이 느끼기에 두 남녀가 참 쓰레기 같았나 보다. 대화를 들으면서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여기서 약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한 가지의 단어가 있다면 ‘화장실’이다. 난 참 화장실을 자주 간다. 특히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남들보다 더 자주 갈 수밖에 없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군검사님과의 진술을 이어가다가 중간에 여쭤보았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당황한 듯한 군검사님은 나를 데리고 같이 나가서 화장실을 같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군이어서 여자화장실의 위치를 몰랐다. 부대는 보통 남자화장실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기에. 결국 그 건물에서는 찾지 못하고 다른 건물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화장실에 도착했다. 근데 너무 끝까지 따라오신다. 대화를 많이 하며 살짝 친해진 느낌이 나서(내가 원래 모르는 사람과 금방 친해진다고 일방적으로 느끼는 타입이다) 여자화장실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짜증 반+장난 반으로 물었다.

“칸에 같이 들어가시게요?”

너무 당황한 군검사님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조금 뒤로 물러나셨다(미안해요 장난이었어요).


암튼 목표를 달성하고 다시 돌아가는 길, 내가 갑자기 또 물었다. 군수과는 어떤 건물에 있냐고.

뭔가 싸함을 감지한 군검사님이 대답했다.


군검사 : 저~쪽 끝 건물입니다. 굉장히 멀죠. 허헛

나 : 음.. 제가 잠깐 가봐도 되나요?

군검사 : 예? 저기를요? 왜요?

나 : 남편 차에서 블랙박스 메모리 좀 빼려고요. 혹시 소송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나 보게요.

군검사 : 아… 안됩니다. 제가 오늘은 민원인분의 진술을 듣기 위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민원인이자 민간인이신 분이 부대 안에 있는 걸 보호해야 하는 임무도 있어서요(감시의 임무였을 것이다)..

나 : 아니 근데, 그 차는 제 남편 차예요. 부부 공동재산이고, 아 그럼 이렇게 할까요? 제가 그 차에 귀중품을 두고 내려서 그걸 가지러 간 걸로. 둘이 입을 맞추죠. 어때요?

군검사 : 아… 안됩니다.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시죠

나 : 그럼… 제가 여기서 저 건물까지 갑자기 뛰면요?(광기) 제가 주력이 좀 좋은데

군검사 : 헉! 그럼 제가 잡으러 가야 됩니다(울기 직전)

나 : 알겠어요. 안 뛰고 안 갈게요. 죄송해요.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추운데 얼른 들어가시죠.


북녘땅도 아니고 눈앞에 보이는 곳에 갈 수 없다니…


약간의 tmi를 더하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 키가 참 작았다. 초등학교 때 아침조회시간에는 항상 키순서로 1번이었던 나는 담임선생님과 마주 보고 살았다. 1~6학년까지 단 한번 2번이 된 적이 있어서 집안에 경사가 났었는데 그 1번 친구가 그만 전학을 가고 말았다. 다시 1번이 된 슬픈 어린이.

근데 문제는 내가 키가 작지만 마르고 팔다리가 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빛. 나는 어릴 때부터 도른자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을 정말 잘할 것만 같은 눈빛. 그래서 체육선생님이고 담임선생님이고 운동회 계주 선발 시즌이 오면 꼭 나를 지목하셨다.

선생님: 야 1번! 너 나와서 저기 골대까지 뛰어봐

나 : 저요?

선생님 : 그럼 1번이 너지 누구야. 그리고 너너 나와

나 : ‘나 진짜 느린데…‘


속으로 생각했지만 예의 바른 어린이였던 나는 입도 뻥끗 못하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뭐든 열심히 한다). 한~참 뒤에 창백해져서 들어온 걸 확인한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또 한 번은 운동회 장애물 달리기 시간이었다.  평균대가 무서워 건너가지 못해서 결국 옆에 있던 체육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건너갔다. 거의 선생님이 안아서 끝지점에 옮겨 준 셈이었다. 그리고 앞 구르기를 하는데 나는 매트에서 시작해서 흙바닥에 착지하는 그 어려운 일을 매번 해냈다. 이게 뭐람.. 하면서 흙을 털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달려서 결승지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체육선생님이 내 손등에 1등 도장을 찍어주셨다. 내가 너무 느려서 다음 팀 아이들 중 1등 아이와 간발의 차였다. 그래서 내가 1등인 줄 아셨던 거다. 예의도 바르고 정직하게 살라는 가정교육을 받았던 나는 당당히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앞팀의 꼴등입니다” 선생님은 너무 놀라셨다. 그리고 미안해하셨다. 대츠오케이.

그리고는 흙이 잔뜩 묻어있는 손등에 침을 발라 도장을 슥슥 지웠다. 흙이 맛있다. 내 인생에서 달리기 1등 도장을 받아보다니. 키키.


tmi가 너무 길었다.


 아무튼 나는 그러면서 계속 그 건물을 바라보았고 군검사님은 뛸 준비를 하고 계시는 거 같았다(다시 한번 미안해요). 보기에는 잘 뛰게 생겼지만, 사실 제 주력은 똥이랍니다.


돌아온 사무실. 긴 시간이 지나고 진술이 슬슬 마무리 되려 할 때 내가 또또 물었다.


나 : 혹시, 제가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 출석해도 될까요?

군검사 : 또 오신다고요? 아, 뭐 때문에 그러시죠?

나 : 아니 더 할 말이 있어서요. 사실 그거보다는… 군대라는 곳이 원래 폐쇄된 조직이니까 봐주기 할 수도 있잖아요?

군검사 : 아이, 요즘은 아무도 안 그럽니다. 그러다 큰일 납니다.

나 : 살다 보니 큰일은 얼마든지 생기더라고요, 올게요. 변호사님이 제가 올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시던데요.

군검사 : 아, 근데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저희 징계위원장님(계급이 기억이 안 나지만 꽤 높았다)께서 민원인은 절대 징계위원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셔서... 그 민원인은 못 들어오셨거든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 : (이 사람 예의가 참 바르다) 그럼 그분을 지금 제가 뵐 수 있을까요?

군검사 : 예? 누구를요? 징계위원장님이요? 지금요?

나 :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절차가 아니라면 편지라도 남기겠습니다. 종이 주세요.

군검사 : 예. 지금 부재중이셔서.. 말씀하신 종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내가 예의고 자시고를 차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에이포 용지에 편지(?) 쪽지(?)를 남겼다. 이러이러해서 나는 이날 꼭 올 것이고, 오게 허락하셔야 한다. 법적으로 내가 올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만약 나를 못 오게 하실 경우,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군대에서나 계급이지 나는 그 분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나의 도른자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아무 서식도 없는 종이에 혼자 서명까지 엄청 크게 했다.

 

그걸 남기고 나오려다 또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군검사님께 정말 죄송하다. 그래도 나의 마음을 참 잘 공감해 주고 같이 분노해 주셔서 이 글을 빌어(안 읽으시길)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  


나 : 아, 그럼 이 두 인원(군대에서는 보통 사람을 사람이라고 안 하고 인원이라는 무정한 표현을 쓴다)은 언제쯤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요? 그러자 군검사님이 대답했다.


"지금 바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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