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무모한 나비야 무한히 날아라
세월은 참 빠르네요.
저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그만뒀던 직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제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말렸습니다. 아직 마음을 더 추슬러야 한다고. 그건 너무 무모하다고.
혹시 ‘무모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인생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지요.
저는 ‘무모함’이 가지고 있는 ’무한함‘을 믿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일. 감사하게도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고, 비록 그 시작은 적자로 무모함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목표치를 조금씩 달성해 나가며 무한한 열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이상하게 들릴까 염려되지만, 가끔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면서 돈을 벌어도 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원래 노동은 고된 것이어야 하는데. 제가 이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는 매일매일이 새롭고 재밌습니다. 마치 취미활동을 하면서 돈을 받는 느낌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면 아직 쓴맛을 덜 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근데 쓴맛이야 뭐 꿀꺽 삼키면 그만입니다.
새롭게 공부를 하고 싶어 또 하나의 일을 저지르고 지금 열심히 자신을 책망하며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주경야독이랄까요. 얼마 전에는 대학교 졸업 후, 정말 오랜만에 중간고사라는 걸 보다가 주님을 만날 뻔했습니다. 저는 도마뱀이라 과거에 힘들게 공부했었던 기억의 꼬리를 잘랐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길을 다시 걷겠다는 멍청한 결심을 했습니다. 미쳤었나 봅니다. 어른들이 '공부에 때가 있다'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옆에서 수강신청부터 지켜봤던 성보라는 “너처럼 생각없이 일 저지르면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히힛.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라는 공간에 저의 비밀이지만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네요.
남편 덕분에 살이 쪽 빠져서 몸매가 아이돌처럼 되었습니다(어차피 여러분은 저를 모릅니다).
마음이 괜찮아지면 자연스레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몸무게가 생각만큼 잘 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야윈 제 모습을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병이 심한 상태였어서 건강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마음이 회복되면서 살 빠진 모습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는데 가장 최근에는 갑자기 건강이 염려되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지 않기만을 바랐던 제가 이제는 오래 살고 싶은가 봅니다.
다행히 건강검진 결과는 아주 양호했습니다. 저는 제가 수면마취에서 깨어날 때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너무 걱정했는데(저도 모르는 우울감이 남아있을까 봐), 제가 눈 뜨자마자 한 말은 스마트워치가 없는 손목을 보며 “어! 저 출근해야 돼요.” 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계속 반복했다고 간호사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알았냐면 간호사님이 나중에 저한테 빨리 출근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셔서 제가 아직 아닌데 왜냐고 되물었기에… 저의 헛소리를 알게 되었다는 너무나도 비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제가 연재한 모든 이야기 중, 이게 진짜 비극이고 슬픈 일 아닙니까… 차라리 남편을 욕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무정한 자본주의가 이렇습니다. 무의식 중에도 출근만을 외치는 K 자영업자.
이참에 평생 싫어했던(싫어하는 정도가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입니다) 운동을 해서 건강미 넘치는 탄탄한 몸매를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피부가 하얀 편이라 구릿빛은 어렵더라도 탄력은 탐납니다. 그래서 요즘은 퇴근 후에 눈을 질끈 감고(feat. 눈물) 운동도 합니다. 마음이 마음을 먹은 거지 몸이 마음을 먹은 건 아니라서 아직도 둘이 서로 타협하는 중인데 거의 노사 간의 첨예한 갈등입니다(해야 되는 건 아는데 너무 힘듭니다. 살려주세요).
PT 선생님께서(a.k.a. 악마) PT가 끝날 즈음에는 제가 운동 중독자가 되어있을 거라고 꼭 그렇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15회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저의 의견의 압도적 우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저를 잘 아시니 그림이 그려지실 겁니다. 운동은 더럽게 못하면서 입만 살아있는 ‘헬쪽이’가 접니다. 아니 근데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건 악마 아닙니까. 진짜 제가 힘만 셌어도 다리라도 걸었을텐데, 제 허벅지 힘으로 못 드는 기구를 팔로 들어올리시는걸 본 이후로는 꾹 참습니다. 갈 때마다 매번 치열한 운동개수 흥정이 수산물 경매장을 방불케 합니다. 하나라도 더 시키려는 자와 하나라도 덜 하려는 자의, 서로 본인 할 말만 하는 팽팽한 싸움. 근데 악마의 의지도 보통은 아닙니다. 제발 선생님이 저를 이겨주시길.
왜 비싼 돈을 내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지는 여전히 의문인 부분입니다만, 일단 의지를 돈으로 샀으니 그냥 합니다. 어찌 되었든 갓생을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을 기다리며 칼을 꼭 쥐었던 손으로 요즘은 펜을 쥐고 공부를 하고, 차가운 돌계단을 기어오르던 다리로 요즘은 천국의 계단을 오릅니다(이 기구는 근데 고문용으로 만든 것이 확실합니다).
* 세월이 속절없이 흐른다고 생각하시면 천국의 계단에 올라보세요. 억겁의 시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운동을 좀 더 해서(?) 멋진 모습으로 혼자 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머지않은 여름, 스페인 남부의 한 바다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세상 도도하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수영을 하다가 모래를 베개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 드러누워 쿨쿨 자는 매력 터지는 한국여성을 보시면 조용히 ‘마리?‘라는 암구호를 외쳐주세요. 그럼 제가 ’뽀사‘라고 하며 커피 한잔 사겠습니다.
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날 수도 있겠네요.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체력이 약해서 늘 상상만 했었습니다. 체력이 늘면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주로 가는 곳이지만 저는 저만의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걸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손미나 작가님께서 쓰신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는 책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가 언제 가야지'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순례길이 나를 부르는 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스페인, 너는 자유다> 라는 책 한 권으로 저는 스페인에서 살아보는 게 버킷리스트가 되었고 대학 졸업 후, 남들이 취업준비를 할 때 저는 무작정 홀로 떠나 그걸 1년 동안 실천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행복했던 1년을, 돈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를 어떻게 하면 두근거리게 만드는지 아시는 정말 멋진 작가님입니다. 그걸 또 행동으로 냅다 옮기는 멋진 독자가 접니다. 산티아고가 날 부른다… 너무 벅찬 순간이겠지요. 그날이 오면 전 바로 떠날 겁니다. 그렇게 자꾸 걸어 나가면 정말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수 있겠네요.
꽤 오랜 기간 다니던 정신과 진료도 이제 곧 끝납니다. 사실 다른 약은 이미 중단한 지 오래되었고 수면에 관한 약만 받아오고 있었는데, 요즘 운동을 하니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너무 졸려서 눈을 감고 옵니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고, 최고의 수면제는 몸고생입니다. 다정한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 전에 이제 이별하자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좀 오라는 말씀을 너무 스윗하게 해 주셔서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가 금세 알아차리고는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선생님 : 이제 슬슬 이별도 해야죠
나 : 아, 요즘은 이혼도 오픈런해야 한대요 세상에.
선생님 : 아.. 그게 아니라 저랑 이별이요
나 : 네??!??!!? 저요???? 제가 선생님하고요?!? 왜요?? 제가 지겨우세요?? 뿌엥 안 돼요(울기 직전)!!
선생님 : (빵 터지시고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제가 훌륭한 의사라면 환자분이 더 이상 안 오는 걸 바라는 게 맞아서 그렇습니다.
하긴..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선생님의 책상 위에 휴지무덤을 만들었던 제가, 최근에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우리 집 성보라가 이 얘기를 듣고 무섭다며, 거기서 왜 웃냐며 저를 입원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진료하실 때면 항상 저 때문에 웃으십니다.
그런데 그만 오라니요 선생님. 저 서운합니다.
약간 슬프지만 행복한 이별을 곧 합니다.
작년에는 가장 친한 친구(레스토랑 그녀x)와 해외여행도 단둘이 갔다 왔습니다. 제가 다시 싱글이 된 걸 처음에는 가슴 아파하고 누구보다 분노하고 같이 울어줬던 그녀는 나중에는 재미있는 친구가 돌아왔다며 은근히 기뻐하고 너무 반가워하던 상또라이입니다.
20대 때 돈에 쪼들리며 친구와 둘이 떠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사회초년생의 우리는, 동남아에 갔다가 어떤 사람들이 고급호텔 라운지에서 멋지게 와인을 마시는 걸 보고는 참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아서 꼭 다시 오자. 그리고 라운지에서 데낄라를 마시는 여성이 되어보자(그 당시 친구와 제가 빠져있던 미드에 꼭 데낄라가 나와서 너무 궁금했던 시절)! 그러면서 호텔에 돌아와 우리들의 영원한 아이돌, god의 노래를 부르며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홀짝 마셨습니다.
“치얼~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삶이 힘들거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별의별 꼴을 다 봤습니다. 저도 저지만 그녀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전화를 해서 인사도 없이 선창을 합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기만 한지’
그러면 상대방은 바깥에 있다면 그냥 글귀처럼 읽었고 집에 있다면 리듬에 맞춰서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건지’
하면서 god의 '촛불하나'를 부르면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나만 제정신이 아닌 게 아니구나.’라는 이상한 위로를 서로 얻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작년 여름, 친구와 휴가를 맞춰 우리 둘이 따로 가본 곳 중에 공통적으로 너무 좋았다고 말했던 나라에 갔습니다. 하루종일 바다에서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수영은 못하지만 바다에서 노는 걸 되게 좋아합니다. 남들은 그런 휴양지에서 비치웨어 또는 비치드레스를 입고 인생 사진을 찍지만 우리는 그런 거 아예 없이 래쉬가드만 입거나 배럴, 아디다스 등의 스포츠 의류만 입고 다녔습니다. 휴대폰은 아예 호텔에 킵. 물놀이에 진심인 자들입니다.
꼬리뼈가 계속 아픈 상태였는데 친구에게 “야, 바다가 나를 힐링시킨다. 지치고 힘든 날 위로해주나 봐. 역시 자애로운 바다네. 파도가 놀기에 아주 딱 좋아! 누려~”라고 말한 지 1분도 안 돼서 후방경계를 안 하다가 큰 파도에 뒤통수부터 등짝까지 후드려맞고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자빠졌습니다. 아마 한 바퀴를 굴렀던 것 같습니다. 짠물을 드링킹한 것도 한 거지만 꼬리뼈가 부서지는 줄 알았습니다(너무 놀라고 웃기고 아픈 탓에 입이 안 다물어져 물을 더 마시는 상황). 일어나지를 못해서 밀려오는 파도에 미역처럼 나부꼈습니다.
깔깔깔. 예끼 이놈아, 어림도 없지. 인생 네 맘대로 되지 않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그게 매력이지.
그렇게 휘청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손에 들고 있던 스노클 호스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좋아. 심폐지구력 훈련 가보자고!
여러분,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한다는데 걱정 마십시오. 매년 제가 까불다가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몰디브 절대 지켜.
그리고 해 질 녘, 해변에 위치한 예쁜 바에 갔습니다. 바다에게 안기는 석양을 바라보며 데낄라 한잔을 각각 손에 들고 엉덩이에 쿠션을 깔고(나의 소중한 꼬리뼈도 절대 지켜),
“우리 진짜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았다!! 치얼~스”
행복이구나. 행복이구나.
흙수저를 물려받았다며 부모탓만 하던 남편과는 다르게 저와 제 친구는 직접 우리 인생의 수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나무를 깎든 철을 달궈 깡깡거리든 금색만 칠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물감과 크레파스를 사 오라는 헛소리를 해대며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데낄라를 마시던 날, 그녀는 저만을 위한 골든벨을 울려주었습니다.
감격의 눈물!!!!! 친구야 소처럼 일하렴!!!! 응원해!!
아, 친구야 그리고 오빠들의 ‘촛불하나’에서 우리가 맨날 안 불렀던 부분 있잖아.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에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 가고.’
이 노랫말이 인생의 진리였다 그치?
그렇게 우리는 20대의 사회초년생이 동경했던 30대의 멋진 여성이 되어 좀 더 여유롭게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절대 객관적인 부자는 아닙니다. 저희 씀씀이가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 50만 원이 넘어가는 소비를 하게 되면 서로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멍청소비인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 흔한 명품 하나 없지만 마음만큼은 만수르입니다.
얼마 전에는 서로 스케줄이 안 맞아 해외여행은 못 갈 거 같아, 아쉬운 대로 호캉스라는 것을 처음 해봤습니다.
하루종일 좋아하는 친구와 쉴 새 없이 얘기하고 눈만 마주쳐도 키득거리고, 뜨거운 열이 나오는 헤어롤을 이마에 대고 있다가 갑자기 너무 뜨겁다며 방바닥에 던져버리는 친구를 보고 또 한 번 침대를 뒹굴면서 눈물 나게 웃다 보니 마치 철부지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 지금도 물론 철은 없습니다.
밤에는 너무나도 럭셔리한 호텔의 고층라운지에서 황홀한 도시의 야경을 보며 칵테일 한잔을 손에 들었습니다.
“치얼~스“
열심히 일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짧은 휴식의 달콤함. 자고로 휴가란 아쉬운 끝이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라는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온 우리의 bgm은 역시 우리들의 영원한 아이돌, god 오빠들의 노래였습니다.
‘버디버디’에서 ‘네이트온’ 시절까지의 그녀의 닉네임은 ‘호영마누라’, 저는 무려 ‘데니부인’이었답니다. 비록 둘 다 슬프게도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남들에게는 말 못 하는 속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나눴습니다(물론 중간중간 저는 노래에 맞춰 또 춤을 췄고 친구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오후 한 시까지 잤습니다. 이럴 줄 알고 레이트 체크아웃 신청도 해놨습니다. 호텔에서 추가요금을 내면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거절했습니다. 우리의 인생 썰이 넷플릭스의 어떤 작품보다 흥미진진하거든요.
아주 멋진 여성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구의 그날 마지막 카톡은
"우리 열심히 일해서 또 놀러 가자"였습니다.
그래 또 가자. 앞으로도 계속 나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같이 가줘. 진짜로 시끄럽게 하거나 귀찮게 안 할게. 얌전히 있을게. 비글은 안 데려갈게. 아무 때나 춤 안 출게. 아무것도 안 할게. 숨만 쉴게. 나 잔다고 너 혼자 조식 먹게 안 할게. 무조건 일어날게.
근데 너도 나랑 있으면 제일 재밌다며. 뿌잉.
- 파워 대문자 E가 파워 소문자 i에게 -
매일 밤 자기 전에 짧게라도 독서를 하는 습관을 다시 들이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만 5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큰일을 겪고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서 책을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공부(응?), 운동(으응??) 등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아졌습니다. 돈을 버는 족족 저에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독서, 공부 그리고 운동은 저를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아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무모한 시작이 가져오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제 그 벌여놓은 일에 책임을 또 져야 하는.. 어떻게 보면 ‘자발적 쇠똥구리병’에 걸렸나 싶습니다. 농담입니다. 쇠똥구리는 이제 제 인생에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겁니다.
살면서 겪지 말았어야 할 일이 제게만 너무 불공평하게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안 겪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일입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으나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주 길고 어두운 시간을 절망 가운데에 빠져서 허덕이고 눈물이 한강이 될 만큼 쏟아냈습니다. 그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눴습니다만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고 분노와 절망과 슬픔의 밑바닥에서 벗어나려는 다소 과격한 행동들도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족들도 너무 힘들었겠지요. 그 행동들은 저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저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힘들면 마음껏 흙탕물에 뒹굴며 힘들어하고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훔치며 그저 버티다 보면 어느새 고통이 줄어들어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크기와 반비례하게 마음은 점점 단단해집니다. 지나치게 빨리 벗어나려는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직 저는 어리고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의 인생에도 크고 작은 고난들이 수없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제가 느낀 것을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저는 종교가 있습니다. 어차피 저의 인생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음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이게 불만이었습니다. 왜 내 뜻대로 살 수 없는지. 내 인생인데. 그런데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인생의 큰 고난을 맞닥뜨렸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에 빠지면 그냥 힘을 빼면 되듯이 말이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도 어떻게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상황들이 반강제적으로 주어졌습니다(증거가 0이었으나 뻥카로 합법적인 모든 증거를 얻은 저의 이야기를 아신다면 아마 다 이해하실 겁니다).
이제는 더 나아가서 앞으로의 제 모습이 기대도 됩니다. 어떤 인생을 멋들어지게 살지, 또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저는 압니다. 힘든 시기가 오면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쏟아내고 흙보다 더한 진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겠지만 결국 저는 또 이겨낼 것이고 그만큼 더더 강해질 것을.
이제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사람들에게 쉽게 받던 상처도 요즘은 그러려니 합니다. 마음에 굳은살이 생겨서 상처에 무뎌집니다.
아직까지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마음은 존재합니다. 이건 오래 걸릴 문제일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일이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오히려 저를 과거에 더 묶어두는 감정임을 알았습니다. 이미 벌어졌고 나를 지나쳐간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미련도 갖지 않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거니까요.
과거의 내가 '~더라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보다, 지금의 내가 '~한다면' 바뀔 미래를 생각합니다.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올해가 가기 전에 최대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 그 둘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다시 싱글이 된다고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처음엔 싫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결혼 전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진 제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자기애가 매우 훌륭하다고 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들 이 정도의 자기애는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전문가가 특별히 큰 편이라고 하니 좋은 거라고 생각하렵니다. 남편에게 받을 위자료로는 건강을 위한 운동이든 공부를 해 지식을 더 채우든 그리고 제 삶의 이유인 여행이든,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그동안 힘들고 애썼던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 쓸 계획입니다.
효녀죠?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 종교적인 말을 쓰게 되어서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만, 저의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원수를, 원한을 갚는 것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까 힘들고 억울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반강제적으로 주어졌다는 표현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탕을 빼앗긴 채 모든 걸 포기하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주먹을 꽉 쥐고 엉엉 울고만 있는 아이 같던 저에게, 저의 하나님께서 제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서 이겨낼 힘이라는 것을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아가야, 더 큰 사탕을 가져왔으니 그만 울고 일어나거라."
당장 눈에 보이는 복수를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저도 힘들겠지요(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인생은 이미 더 크게 고꾸라졌고 그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도 저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의 오래된 절친(호영마누라)이 해준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 성보라와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취미인 야구를 보러 갔습니다. 답답한 경기 9회말에 터진 적시타와 끝내기 안타!
마치 저를 위한 선물 같았습니다. 흥이라는 것이 터져버린 저는 예전 대학생 때 야구장에 있던 모습 그대로, 미친 듯이 일어나서 춤을 추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얼마 만에 그렇게 크게 내지른 함성인지요.
* 제가 대학생 때, 굉장히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그다음 시즌 내내 구단에서 틀어주는 애국가 영상에 나왔습니다. 가족, 친구들은 다 창피하다고 했지만 저는 너무 뿌듯했습니다. 가문의 영광 아닙니까. 애국가에 등장하다니요.
아무튼 그렇게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데 성보라는 저한테 뒷사람들 시야 가리지 말고 앉으라고 했습니다(징글징글). 그러나 저는 이미 무아지경.
야구장의 냄새는 언제나 동일하고, 항상 저를 과거와 연결시켜 줍니다. 흙과 촉촉한 잔디가 뒤섞인 다이아몬드의 냄새. 후각은 기억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 그 끝내기 안타가 터지던 순간, 저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모습으로 있었던 십 년 전의, 세상물정 모르고 순수했던 저와 조우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녕~오랜만이야, 반가워!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차 음악도 듣지 않고 다니던 제가, 요즘 출퇴근을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저 이제 많이 행복한가 봅니다.
저는 점점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겁니다. 제 인생에 예기치 않았던 불행이 갑자기 찾아왔듯이 예기치 않은 행복도 살며시 찾아오겠지요.
그게 뭐 대단한 행복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에게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과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리고 앞으로 제가 마주할 인생이 어떻게 완성되어 갈지는 한 치의 오차도, 단 하나의 실수도 없으시며 아무것도 아닌 저를 특별히 많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저는 그저 제게 허락된 하루를 감사함으로 열심히 살아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무지한 ‘무모함‘을 통해 언제나 놀라운 ’무한함‘을 보여주시는 분이기에 저에게는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독자님들의 응원 댓글을 많이 받았습니다. 글 하나로 저에게 이렇게나 힘이 되어주시다니요. 독자님들 덕분에 혼자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저의 무모한 끄적임이, 모두에게 열린 공간에서의 무한히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써주신 그 마음을 제 마음에 꾹꾹 아로새겨 평생 소중히 간직하며 그 다정한 응원에 힘을 얻겠습니다. 힘들 때마다 꺼내 보겠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저를 가장 따뜻하고 예쁜 마음으로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인생에 기어코 나비가 다시 등장했듯이 여러분의 인생에도 끝끝내 나비가 팔랑이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모두들 평안하시길 소망하겠습니다.
*저의 브런치스토리 연재는 여기에서 끝납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저의 삶은 독자님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어떤 일을 겪게 되면 ‘아, 우리 독자님들의 상상 중 하나가 내게 일어났구나.’ 생각하겠습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 저의 이야기로 희로애락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Adiós!
-Mariposa(마리뽀사-스페인어로 '나비'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