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나는 솔로
안녕하세요.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어떻게 보일러댁에 아버님 하나 장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이거 모르면 mz).
갑자기 뜬금포로 소식을 알리는 너무나도 저다운 글이네요:)
연재가 이어지는 건 아니고 저의 이혼 소식을 브런치라는 대나무숲에 알리고자 갑자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레츠고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게 날씨와 계절은 참 많은 행복과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참 잔인하게도 아픈 기억은 더 선명히 날을 세운 채로 다가온다.
격동의 한국사, 그 한복판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나 평생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던 나의 외할머니는 한결같은 소원이었던 ‘구름 한 점 없고 하늘이 파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주님 곁으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그 소망을 기어이 이루셨고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야속하게 새파랗고 아득히 높은 하늘을 보면 손주들 중 가장 막내였던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던, 우리 핢니 생각이 난다.
3월의 매정하리만치 추웠던 짙은 회색의 어느 날, 나와 16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내가 가장 사랑했던 댕댕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어떤 존재를 이렇게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내 강아지. 말썽 한번을 안 피워서 자식 셋 중 가장 낫다는 부모님의 극찬을 받은 우리 착한 막내. 한반도에 큰 지진이 났을 때 부모를 제쳐두고 나의 겉옷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내가 안고 뛰어내려간 그런 내 전부. 난 그날 이후로 호적에서 파인 거 같지만, 그때 난 너와 함께 지구 끝까지라도 도망갈 수 있었어 댕댕아.
*그때 집에 없었던 성보라는 우리집에서 네가 제일 느리고 강아지가 제일 빠르다며
“다음부터는 안고 내려가지말고 먼저 도망가게 놔두고 너 혼자 알아서 내려오렴.” 이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댕댕쓰. 그 댕댕이가 나를 두고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계절, 그날이 오면 하루종일 코끝이 아리고 뼛속까지 그리움으로 가득 찬다. 꼭 또 만나 내 베프!
*tmi
펫로스 증후군을 심하게 앓던 내가 부부상담을 받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집, 사람 그리고 나무를 그려보라는 미션을 주셨고 나는 또 성실히 수행했다. 그다음 주가 되고 상담사님이 내가 그려놓은 마당이 있는 집에 있는 비어있는 개집을 보고 물으셨다.
상담사님 : oo 씨 마당이 상당히 넓은 집이네요~ 그런데 여기 강아지 집도 있어요. 강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나 : (흐린 눈으로) 죽었어요
상담사님 : 네?!?
나 : 몇 년 전에 죽었어요. 그래서 없어요 이제. 근데 제 마음속에는 아직도 있어요
상담사님 : …………….. 아……
긴 침묵이 이어졌고 상담사님은 바삐 종이에 뭘 적으셨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라고 적으셨겠지.
내가 차가운 돌계단에서 남편과 상간녀를 기다렸던 그즈음, 그 날씨의 냄새가 나는 계절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인생의 큰 폭풍이 지나간 뒤,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이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난 더 이상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이혼소송을 걸 수 없게 된다. 빌어먹을 법이라는 것과 여기에 이어서 남편이 나에게 역으로 이혼소송을 걸 수도 있다는 건 예전 연재 글에서도 말했었다. 그럼 곱게 최대의 위자료를 받으면서 소송까지 갈 거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합의이혼이다. 고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혼을 해주겠다고 했다. 놀란 거 같았지만 여전히 이혼을 너무 하고 싶은가 보다. 참 한결같다. 그렇게 날짜를 서로 잡았고 내가 사는 지역 가정법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요즘은 오픈런이 필수라고 해서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둘 다 도착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갔고 어디에 서식하는지 모르겠는 남편은 차를 타고 왔다.
카카오티로 가정법원을 찍고 택시를 불렀기 때문에 연세가 많은 기사님은 나의 목적지를 알고 계셨다. 내가 탑승하자마자(정확히는 엉덩이 한쪽이 마저 타기도 전에) 현 정권에 대한 욕을 비와이처럼 쏟아내셨다. 삶이 고단하신가 보다. 간간이 맞장구를 쳐드리며 갔다. 근데 어르신들은 왜 이름을 얘기할 때, 특히 정치인들을 얘기할 때 주격조사를 두 개씩 쓰시는지 궁금하다.
예) 홍길동이(x) 홍길동이가(o)
잡생각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나다.
그러다 갑자기 룸미러로 나를 한번 보시고
기사님 : 아니 근데 가정법원엔 무슨 일로 가요?
나 : 이혼하러요
기사님 : 그래~ 시원찮은 것 하고는 그냥 인연을 끊어요
시원찮은 놈인걸 어떻게 아셨는지.
나 : 시원찮은 남편이 바람을 펴서 제가 직장에서 잘랐어요. 그리고 돈 받고 이혼하려고요(다신 안 볼 사이니 이곳 또한 대나무숲)
기사님 : 이런 그런 xx 놈들은 그 병 절대 못 고쳐. 한번 바람피운 새끼는 평생 그 더러운 버릇 못 고쳐요. 아가씨가 아주 결단력 있게 잘했네! 아우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속이 다 시원하네.
나 : 흐흐 감사해요
기사님 : 잘 가요~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행복하게 살아요~ 아 그리고 평점은 별 다섯 개! 오케이?
나 : 네 안전 운행하세요~!
나 대신 쌍욕을 시원하게 뱉어주신 분. 제 점수는요~
별 오천 개가 모자라다.
9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바깥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중년(?)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나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분들은 여기에 무슨 목적으로 오신 거지?’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 남편과 그 앞에 있는 엑스레이 검색대. 와 여기서 이걸 한다고? 가정법원이라는 말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기계가 있었고 나는 당당하고 도도하게 가방을 올렸다.
직원 : 가방 안에 음식물 없으시죠?
나 : 네 없습니다.
직원 : 그럼 확인 한번 해주시죠.
나 : 제 가방이요? 왜요?
하면서 열었는데 열자마자 보였다.
‘하리보젤리’
그 망할 귀여운 곰들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는 곰들을 들고 서 있는데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참으로 내 인생 진짜.. 비글은 비글이다.
*tmi
아주 예전에 혼자 유럽 여행을 한 달 정도 한 적이 있다. 스페인에서 살 때 다 못 쓰고 가지고 왔던 유로 동전들이 많았어서 그걸 동전지갑에 넣고 기내용 가방에 넣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하는데 보안 검색대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가방을 열어보란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가방을 열었고, 직원은 내 동전 지갑을 열어봐도 되냐고 했다. 물론 열어보셔도 되는데 그거 동전이에요. 아랑곳하지 않고 그걸 확인한 직원이 이윽고 날 보내줬다. 조금 의아했지만 면세품 구경을 할 생각에 신이 난 나는 금방 잊어버리고 온 공항을 쏘다녔다.
그리고 경유 공항이었던 독일 뮌헨 공항. 또다시 기내수하물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참으로 독일인다운 남직원이 나를 또 부른다. 가방을 열어보라며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대략 몇 시간 전의 기억이 떠오른 내가 아 그거 동전이라고 했는데 갸우뚱거리며 옆직원과 뭐라고 하고는 그래도 열어보라고 했다. 짐도 무겁고 피곤한데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동전지갑을 꺼내서 확인시켜 줬다. 봐라 유로다 유로!
오케이 사인을 하며 가도 좋다는 손짓을 하는데 나의 무모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뒤돌아서서 물었다.
“저기.. 나도 그 엑스레이 좀 볼 수 있을까?”
굉장히 의아해하며 왜 네가 이걸 확인하냐는 표정으로 왜? 라며 반문한다. 그래서 내가
“아니 사실 아까 우리나라에서도 걸렸는데 거기서도 설명을 안 해주고 너네도 지금 날 불러서 확인해 놓고 왜인지 말을 안 해주니 내가 너무 궁금하쟈나.”
한번 크게 웃은 그가 세상 쿨하고 친절하게 본인 자리로 오라고 하더니 내 짐가방 사진을 보여줬다. 설명까지 해줬다. 아! 바로 납득이 갔다. 모든 것이 살짝 투명하게 비치는 엑스레이 사진 속 새까아아아아맣게 뭉쳐져 있는 덩어리. 누가 봐도 수상한 물건이었다.
오케이 내가 봐도 너무 이상하다.
“가릣 가릣 땡큐!”
하고 첫 목적지인 스페인에 도착했다. 스페인 지인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세상 무섭고 경직된 독일 공항 직원에게 그 말을 되물은 거 자체가 참으로 또라이같은 너답다고 했다. 자기네들은 쫄보라 가라면 잘못이 없어도 얼른 짐을 챙겨서 주섬주섬 갈 거 같다며.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궁금함이 항상 앞서는 나다. 그리고 우린 위아 더월드 아닌가. 지구촌 친구들끼리 무슨 국적을 가지고 색안경을 끼나. 호옥시 만약 뭔 일이 생기면 그건 외교부가.. 흠… 외교부 힘내!!!
그 후로는 검색대를 통과할 때 나름 꼼꼼히 계획하고 정리했는데… 하리보라니.. 성보라가 내 인생에는 망신살이 있는 거 같다더니 맞는 듯.
오늘도 역대급으로 긴 tmi
아무튼 건물 안에서는 취식이 안 된다는 직원의 경고를 들으며 나는 계단을 통해 서류를 내는 곳으로 갔다. 근데 아까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던 부부. 도란도란 서류 작성을 하고 있다.
부부의 세계란.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아서 속전속결로 서류작성을 마쳤다. 우리는 자녀가 없으므로 한 달의 숙려기간을 갖고 다시 오라고 했다. 아 귀찮아 죽겠네!
그렇게 서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헤어졌고 약속한 한 달 뒤, 나는 일을 하는 중간에 택시를 타고 다시 가정법원으로 갔는데 무려 대기번호 24번을 받았다. 인산인해를 이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공간. 이혼하는 부부가 이렇게 많다고?
중년의 부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우리같은 젊은 부부들도 이따금씩 보였다. 합의이혼이라 그런지 다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줄을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묘한 동질감과 슬픔을 느꼈다. 우리들의 마음에 무게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건물은 땅속으로 꺼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웃프다.
남편과 나 사이에 어색한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남편이 미리 서류를 작성해 놨는데 나의 본적을 몰라서 못 적었다는 싱거운 말을 건넸고 나는 내가 알아서 적겠다고 했다. 그러다 대기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걸 직감한 우리는 약간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남편은 엉망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기술을 배운다고 했다. 분명 또 얼마간 하다가 못하겠다고 하겠지. 마침 그때 내 사업에 관련된 반가운 전화가 왔고 그 통화 내용을 남편은 고스란히 옆에서 들어야 했다.
주님. 베리 나이스 타이밍이었습니다:)
통화를 끝내자 갑자기 나에게 사업은 잘 되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답했다. 모든것이 풍요롭다고(거짓말). 그랬더니 잘 됐네라고 말한다. 서로 미워할 감정과 싸울 기운조차 남지 않은, 마치 오징어게임의 이정재와 박해수의 마지막 씬 같았달까.
판사 앞에서 영혼 없는 이혼 의사를 밝히고(난 이 와중에도 우리의 대기번호가 26번이라는 틀린 사실을 당당하게 말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고 남편이 얼른 정정했다. 이모, 여기 망신살 1인분 추가요!) 확인서를 받아 나오는 길, 내가 말했다.
나 : 이제 마지막이네. 나 대타로 구해놓은 사람이 있어서 아직 시간 여유 있는데 커피 한잔 하자
남편 : 안 그래도 카페 어디 없나 찾아보고 있었어
나 : 여기 앞에 있더라. 가자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남편은 나에게 얼마 전 둘째 조카가 생겼다고 했고 내가 “응, 딸이잖아.” 했더니 상당히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 그래서 말했다.
“난 다 알아.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조용히 살아.”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깨달았다. 남편의 외도가 시작되던 시점. 분명히 남편이 나를 보고 있는데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마지막 날 그 카페에서 다시 느꼈다. 내가 남편을 보고 있지만 내 눈에 담지 않고 있음을.
데려다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택시를 타겠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남편이 “oo아, 이쪽 길로 가야지. 그래야 네 방향이야.”라고 했고 나는 웃음을 지었다.
“어 그러네. 고마워. 안녕.“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잘 살아. 진심이야.“
라고 했다. 남편은 끄덕이며 나를 보고 웃었다.
너무나도 너다운, 너무나도 나다운 우리의 마지막.
뒤도 안 돌아보고 택시를 타러 내려가는 길, 평일의 한낮이라 그런지 대로변임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자작 사자작 낙엽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어린아이처럼 일부러 더 세게 밟았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시원한 공기가 갈비뼈 한 대 한 대로, 그 사이사이로 꽉 차게 들어와서 두둥실 날아갈 정도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솔로나라의 향기.
택시를 타고 하마터면 복잡한 생각을 할 뻔한 그 순간에 보험설계사님이 내가 부탁드렸던 상품 가입 준비가 완료되었다며 녹취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슬프고 기쁘고 자시고도 없이 네네네네네네네네네만 이백번은 했다. 그러다 다시 일터로 왔고 또 소처럼 일하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설계사님도 베리 나이스 타이밍:)
그리고 일주일 가량이 지난 후, 운동을 막 시작하려는데 톡이 왔다. 잘 처리가 되었다고,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다고.
난 이제 사람들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지겹고 싫다. 애초에 나에게 미안할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읽씹.
안녕. 이제 진짜 안녕이다.
난 너보다 훨씬 더 행복할게:)
이혼 후에 오는 것들?
- 위자료, 솔로나라 그리고 마침내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