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8년차 직장인의 새로운 시작
#불안장애 극복하기
내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설렘 가득 안고 잠을 자본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금의 나는 왜 내일이 오는 것이 지독하게도 겁이 나고 두려운 것일까. 죽을 날이 정해진 시한부 인생이었을까? 아니면 죽을 만큼 싫은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기 때문일까? 사실 그런 일도 없었고 시한부의 삶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왜 그토록 내일이 두렵단 말인가. 그건 바로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선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웃음도, 미래를 그리는 행복한 나의 모습도 말이다. 무언가 큰 벽에 부딪힌 것 마냥 안간힘을 써봐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레바퀴 같이 반복되는 삶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스스로 불안장애 직장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불안장애 환자가 되어버린 나는 지금도 정신과에서 지어온 항우울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나는 하루종일 하품이 계속 나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졸립고 멍한 상태가 너무나도 좋다. 불안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된 지 3년이 된 어느 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해야 하는 편이 맞다. 그렇게 나는 약의 도움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줄어듬과 동시에 불안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을 벗어나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2막이라고 해봐야 대단할 건 없다. 단지 불안장애 환자가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 순차적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2막이 시작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7년간 쌓아왔던 밝고 능력 있는 이미지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7년간 열심히 다녔던 회사와의 이별을 선택했고, 그리고 새로운 회사와의 만남을 선택했다. 이 모든 것들이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이 보면 그냥 이직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장애 직장인인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고 선택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릴 정도로 말이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동료들 속에서 불안을 극복하는 것보다 현재 이해해줄 수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극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첫 번째 선택이었던 나의 휴직은 우울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직장에서 상사들은 우울증으로 휴직을 쓰는 나를 나약한 인간으로 보았다. '너는 나약한 거야. 돌아오면 누가 널 받아줄 것 같아?'라며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 상사들이 있기에 휴직을 쓰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번째 선택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렸던 나에게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꼭 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꼭 행복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삶 말이다. 가끔은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멍하게 보내는 그런 삶 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되었고 미래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회복된 것이라 느끼고 회사와의 이별이라는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되었다. 7년을 함께해온 직장동료들은 나의 선택을 말리기도 했고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나를 아프게 한 회사보다는 나 자신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렇게 7년을 함께 해온 직장생활을 모두 청산했다. 이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당장의 밥벌이에 대한 걱정은 나중 몫이었다. 3달의 휴직기간 덕분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다행히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뿐이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했고 나의 인생 2막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나의 세 번째 선택. 운이 좋게도 새로운 회사를 가게 되었다. 다행히도 지인이 추천해준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남들 다하는 이직이기도 했고 자신감이 있었던 나에게 이직은 별 걱정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이직을 쉽게 생각했던 탓일까? 그때는 몰랐다. 새로운 이직과 함께 퇴사를 고민할 줄을 말이다. 심지어 나를 추천해주었던 지인에게 말했다. '형 저 퇴사할까 봐요...'
사실 나는 환경만 바뀌면 나의 불안감뿐만 아니라 복지도 좋아지고 연봉도 높아지고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출근시간, 퇴근시간, 근무지 등 바뀐 것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게다가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들, 새로운 일들은 나를 더욱더 지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경력직에 대한 기대감에 부흥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나를 불안 속으로 다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동안에 회복했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다시 불안장애 환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못할 것만 같았고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또다시 시작된 불안은 회피하도록 나를 부추겼다. '회사를 퇴사하면 모든 걱정들이 사라질 거야. 얼른 퇴사해' 마치 내 귀에 속삭이듯이 말이다. 그렇게 한순간에 나는 무너져갔고 불안을 극복했다는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회사를 바꿈으로서 불안을 잠시 회피하고자 했고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불안은 다시 찾아왔고 나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불안이란 감정은 회피한다고 해결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결국 나 자신을 속인 대가를 치른 셈이다
더 이상 불안이라는 존재는 멀리한다고 멀리 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님을 깨닫기는데 걸린 시간 3년.
불안장애 환자가 되어버린 것도 결국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 또한 3년.
그렇게 바꾼 나의 생각들은 이렇다.
.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두렵지만 적응한다면 한층 더 성장해 있는 것이다.
. 새로운 일은 어렵지만 그 일을 겪고 나면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 힘들고 지친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회피하는 것보다는 나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꿈으로써 비로소 내 인생의 3막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월급은 똑같은데 왜 남들보다 더 일을 많이 해야 하지? 그냥 최대한 티 내면서 야근도 하지 않고 조금만 일해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던 것 같기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또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똑같이 월급을 주는데 굳이 힘든 일을 나서서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계속 회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떠한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겁쟁이로 변해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과거 어느 때와는 조금 다르다. 같은 월급에도 힘든 일을 할 생각도 있고 회피하고 싶지도 않다. 회피하는 것보다 마주하고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낄 때도 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더 힘들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주는 편안함이 나를 불안에서 멀어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결말은 늘 나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수없이 불안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불안들이 반복해서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두렵다기보다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부터 들기 시작한다. 이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잘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이 다가왔을 때 내가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불안을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첫 시작이지 않을까.
그렇게 불안장애 환자인 나는 불안 없는 삶을 조심스럽게 꿈꿔본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