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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Apr 13. 2020

불안장애 직장인 8년 차 이직 이야기 2

#불안장애 극복하기

 

 불안장애 직장인의 지난 3주간 이직 이야기를 풀려고 한다. 직장생활 만 8년 차로 접어든 나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나이는 34세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겁이 나는 나이이기도 하다.


 사실 이직 2주 차는 지옥 같았던 시간들 뿐이었다. 이직과 동시에 나의 불안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었고 무기력했으며 심지어 또다시 퇴사까지 생각했다. 2주간 나보다 더 마음고생을 했을 나의 형과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하다고, 아니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날의 나는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하면 불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해결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그냥 나는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나 자신을 속이며 말이다. 환경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도움은 되었지만 불안을 해결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직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남들이 이직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너무나도 쉬워만 보였고 좋아만 보였다. 심지어 회사를 옮긴 지인들의 모습은 더욱더 즐거워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연봉의 인상과 나아진 복지혜택 등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모습만 보고 말이다. 그리고 이직한 그들에게 단점보다는 장점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 같은 어려움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무차별적으로 찾아온 새로운 환경에서의 낯설음은 너무나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궁지로 몰아갔다. 어떤 무리와 조직이 갖춰진 상태에서 내가 그 틈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신입사원도 아니고 경력사원인 내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더욱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름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리기도 하고  적응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었다. 그렇다고 경력으로 온 나에게 친절하고 살갑게 다가오는 직원들도 없었다. 내가 이전 직장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이전 직장을 다닐 때 경력직으로 온 사람에게 살갑게 먼저 이야기를 걸었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예 없던 것 같기도 하다. 경력직으로의 이직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느끼게 되었고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못할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이직을 결심할 때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어지는 업무들 또한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이전 직장에서는 내가 의사결정을 하면 되는 위치였고, 내 업무였고 모든 것이 내 바운더리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직장에서의 업무는 내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업무뿐만 아니라 새로운 업무환경, 결시스템 등 모든 것이 달랐다.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는 관련 업무의 모든 담당자들을 내가 알아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반면 새로운 직장에서는 어떠한 담당자도 계속 물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입사원보다 못한 내가 된 것만 같았다. 점점 자신감은 없어져만 갔점점 내 머릿속에는 과부하가 걸릴 뿐더러 마음이 급해져만 갔다. 빨리 성과를 내어야 하고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얻고 싶었던 내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들이 생겨났고 나를 점점 불안 속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정신과를 찾았고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불안장애 환자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렇게 맞이한 이직 3주 차.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조금씩 나도 모르게 적응을 해나가게 되었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무렵 나의 인생 멘토이자 인생 선배인 친형은 나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만큼 큰 도움을 주었다. 나의 친형과 나이차는 3살이지만, 늘 나보다 3년 먼저 새로운 것을 해 나갔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에는 대학생, 내가 대학생일 때는 직장인, 나보다 더 빠른 이직의 경험 등 항상 나보다 먼저 경험했다. 이 말은 즉슨 고생도 먼저 해 나갔다는 말이다. 형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는 형이 닦아 놓은 그 길을 참고해서 걸어가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형에게도 불안은 찾아왔었다. 지금은 불안을 극복하고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 나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그런 형이기에 나의 힘듦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고 조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형에게 모든 증상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흐를 뿐만 아니라 회사를 가는 내내 지옥 같은 시간들이고 무엇하나 해낼 수 없는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가 계속적으로 이어진다고 말이다. 형은 나에게 말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이다. 네가 얼마나 힘들지 다 안다고 말이다. 그러나 네가 지금 힘들어하는 것이 분명 어떠한 생각에 있어서 잘못되어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네가 하는 말은 다 맞는데 너의 머릿 속 알고리즘이 어딘가가 잘못 짜여있는 것 같다. '성장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그런데 못할 것 같다', '해내지 못할 것 같다' 다 당연한 말들을 너는 하고 있다. 네 말이 다 맞는 말인데 이처럼 왜 불안이 오는 것인지 말이다. 누군가나 다 똑같이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 하는 일은 못하는 게 맞고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며 걱정하는 것도 맞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같이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다. 내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들. '나이가 들고 무시받는 부장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 등 이런 말들을 하고 살았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힘든 건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죽어도 야근을 하기 싫어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어 했다. 여기서 나의 이상한 점을 찾게 되었다. 성장은 하고 싶은데 힘들고 싶지 않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힘이 드는 것이 당연하고 더 노력하고 야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지금까지 흔히 말해 인생을 날로 먹으려고 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힘도 안 들이고 잘 나가고 싶어 했고 성장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것이 분명 나의 불안의 원인이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한 이후부터 내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만 주어지면 심장부터 뛰었고,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만 앞서던 내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어떻게 말인가?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구나!', 야근을 하게 되면 '성장하는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지!' 라며 말이다.


 7년 동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조차 잊어먹었던 나였다.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했었고 성장이 없었던 시간은 나도 모르게 겁쟁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힘들고 어려운 것이 맞다. 그 힘듦이 지나가면 내가 성장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참으로 바보 같았다. 인생을 날로 먹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말이다. 성장과 힘듦은 뗄 수 없는 것이라며 인정하는 그 순간 나는 조금씩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불안을 인지하기 위한 노력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불안을 다 인지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이직이라는 경험을 통해 불안의 어느 한 부분은 당당히 인지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들 중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힘들긴 싫고 성장하고 싶다' 라는 말처럼 말이다. 불안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 번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들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굴레 속 나를 발견할 수 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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