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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May 12. 2024

되찾은 월요일

눈을 떴다. 월요일 아침이다. 갑자기 입꼬리가 올라가며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오늘이 정말 월요일이 맞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월요일이 맞다. 그러나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이다. 나는 퇴직자다. 월요일을 이제 나를 위한 요일로 바뀌었다. 일부러 어떤 약속이나 일정도 만들지 않았다.  직장에서 나오기 전까지도 일요일 늦은 오후,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다섯시쯤이면 긴장과 불안으로 기분이 우울해지곤 했다. 월요병으로 잠자리에 누워 한주동안 처리해야할 일의 목록을 되새겼었다. 하지만 월요일을 해방시켰다. 이제 월요일은 must의 동사로 시작하지 않는다.  


일요일 저녁 소파에서 남편과 나눈 대화는 잠자리까지 이어진다. 업무 스트레스가 병이 되어 두번째 안면바미를 앓고 있는 남편은 온라인의 병의원을 검색하여 찾고 있었다. 어제도 의원 한곳을 방문하고 왔다. "자기야, 방문한 곳은 어때? 뭐라고 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돌아왔을까 궁금했다. "환자를 고칠 의향이 하나두 없드라구." 잔뜩 기대를 하고 방문한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기대와 달리 부정교합 턱교정을 위한 치과만 소개하면서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턱의 문제가 없는 일반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만난 휘황찬란한 광고의 여파였다. 


실망이 큰 남편에게 "자기야.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 매일 매일 조금씩 좋아질거야. 한 두달 안에 낫는 것이 아니니 인내심을 가져보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안과수술로 모로 누워자야 하는 남편과 다시 낮은 목소리의 대화를 이어갔다. 영업실적을 끌어올리고 목표달성을 위해 영혼까지 바쳐 일했지만 오십이 갓 넘어 몸에 남은 흔적은 너무나 깊었다. 남편이 느꼈을 감정을 다시 한번 물어주고 속상함을 위로해주었다. 잠자리 토크가 계속 이어졌다. "자기야 . 잘 자." "응". 눈을 감았다. 


아마 회사에 출근하는 일요일 저녁이었다면 이런 여유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잠자리에 눕는 순간 월요일 오전 출근과 동시 집중모드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시뮤레이션으로 돌려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같이 자리에 누운 남편의 감정을 헤아려주거 내 일처럼 되뇌일 여유조차 없이 일요일 밤부터 몸은 이미 업무 준비모드로 가동되고 떄문이다. 매일 아침 아직 어두운 6시 30분. 지하철역까지 몸을 깨우는 음악을 들으며 종종 걸음으로 걷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따뜻한 라떼로 각성을 높이고, 바로 메일박스에 쏟아져 들어온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점심 시간이 되서야 주말 안부를 물으며 동료와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광화문 광장이나 청계천을 걸었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다시 데드라인으로 줄서 있는 일들을 처리하고 동료들과 다시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퇴직후 일요일과 월요일 아침이 달라졌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만 조급하게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더 오래 오늘 아침 감정과 일과를 떠올린다. 마음이 바쁘지 않다. 어제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 마음에 머물렀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오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한 주의 일정을 훑는다. 오늘은 취미로 드로잉을 배우고 싶어 시작한 오일 파스텔 수업이 있고, 오후에는 3개월만에 다시 시작하는 쇼트트랙 레슨이 있다.


작년 12월은 여행과 담낭수술 여파로 오래 쉬었다. 스케이트 코너링을 시작하는 단계라 겁도 난다. 하지만 새로운 운동은 두려움과 마주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직은 왼쪽 다리에 힘이 부친다. 코치가 말하는 오른발을 접어 무릎이 거의 빙판위에 닿고 접힌 왼발이 오래 지탱하는 자세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운동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경험해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겁이나지만 한발자욱 내밀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긴 직장생활동안 잃어버린 월요일은 이제 내 옆으로 왔다. 팽팽한 긴장감과 피로가 아닌 본래의 정상적인 하루로 서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요일, 텅 빈 자리로 남아 있어서 더 소중한 하루가 되었다. 다시 찾은 월요일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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