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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5. 2019

문화예술 명소 이야기 2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예술가들의 터전, 옥인길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옥인길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곳이다. 조선시대 중인과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세종대왕의 생가터,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근대와 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같은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졌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골목,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는 민족시인 윤동주 하숙 집터가 있다. 1941년 당시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동섣달 핀 꽃처럼 비장한 인생을 살았던  윤동주는 하숙집 근처 인왕산 자락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윤동주 하숙 집터 근처 옥인동에 있는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건축된 한옥, 양옥, 중국의 건축양식이 조합된 화려한 집이다. 서양의 입식 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이 조합된 주택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다. 한국화단의 거장, 박노수 화백의 40년 동안의 삶과 작품세계가 주택과 정원 곳곳에 남아 있다. 1층 벽돌조 구조와 2층 목구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주택 현관의 바닥과 벽타일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소> 화가 이중섭은 누상동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일생 최초의 개인전이었던 미도파 화랑 전시회를 준비했다. 삶의 고뇌를 진솔하게 화폭에 담았던 이중섭은 이곳에서 <도원>, <길 떠나는 가족> 등을 그렸다. 힘겨웠던 그의 삶처럼 누상동 가옥에 이르는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통인동에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가 있다. ‘이상의 집’은 그가 거주했던 건물은 아니지만 1912년부터 1933년까지 한평생을 보낸 장소로 의미가 있어 한옥 기와에 통유리 창을 내어 전시공간으로 조성했다. 예술가가 머문 자리에 앉아 시 한 줄 읽으며 잠시 쉬어가도 좋다.     


문화예술 소극장이 모여 있는 혜화동 로터리 길

흔히 대학로라 불리는 혜화동 로터리 길은 공연예술 문화의 거리다. 예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했던 혜화동은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주변의 대학생들이 모이면서 대학로라는 개성 넘치는 거리로 변했다. 서울대학교는 1975년 관악산 아래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 1929년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됐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미술관과 크고 작은 공연장들이 모여 있다. 소극장에서는 매일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공원 내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윤선도는 근처 이화동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귀양 생활을 했다. 시비에는 유배지에서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과 벗 삼았던 외로운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공원 옆에는 1931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지은 벽돌 건물이 있다. 광복 이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됐다. 아치 모양의 중앙현관이 있는 3층 건물은 장식 없이 단정하다. 1930년대 근대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예술가의 집’으로 다시 태어난 건물은 수많은 공연장이 있는 혜화동에서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발표할 장소가 없는 예술가들에게 장소를 대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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