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인들은 의지에 대해 많은 이야길 듣는다. '의지가 없으니까 저러지', '의지가 약해', '밥 먹는 거 하나 스스로해결 못 하다니." 환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쁜 중독(병)에 걸린 의지 없는 사람처럼 비쳐 쳐지기 쉽다. 물로 나 역시 의지에 대해 언급했었고 본인이 헤쳐나갈 의지가 당장 없다면 천만 원짜리 치료를 받아도 낫기는 어려운 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아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좀 바꿔봤다. 묘하게 둘은 닮았지만 다르다. 훨씬 긍정적인 표현이니까.
그것은 바로 희망 잡기다.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무엇이 가장 큼 힘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단연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피를 토해가는 상황 속에서도 부여잡아야 하는 희망, 자고 먹고 싸고가 안돼 오열하는 상황에서도 놓치면 안 되는 그것. 그게 희망이었다.
2화처럼 내가 얼마나 좋아졌고 또 그로 인해 이런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어떻게 도달했는지 아주 세세히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나 역시 내가 제일 답답하다.
그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말라는 말뿐이다.
그리고 구토 이후의 삶이 얼마나 꿈같은 기적인지 느끼게 해 줄 능력이 다다.
희망 잡기는 의지를 운운하는 것보다는 쉬운 것 같다. 정말 칠흙 같고 이 한 몸 뉘일 곳 없을 때조차 우리는 희망을 잡을 수 있다. 맘에 들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효과는 꽤나 크다.
그 칡흙의 너무 먼 곳에서 반짝이는 그 무엇이 그리 멀어 보여도 당신이 희망을 믿는다면 곧 그 희망은 당신의 손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빛줄기 하나만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이 긴 병에서 적어도 나 만큼의 성장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상대로 상상으로 암세포를 치료했다는 책 <씨크릿>의 말처럼 우리가 믿고 희망한다면 우린 다시 먹을 수도 소화시킬 수도 배변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것들이 어려운 이유는 그렇게 되면 곧바로 살이 찔 거라 생. 각.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걸 버텨내는 힘이 그 후를 책임진다고 생각한다. 그때 자신을 믿는 힘이 필요하다. 주위의 무수한 격려와 수천 마디의 긍정이 필요하다. 그게 어쩌면 의지보다 중요하다.!
괜찮다고, 지금이 훨씬 생기롭고 예쁘다고,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고, 살이 쪄 포동 해진 볼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고, 생 라이브로 듣는 것이다.
수천 명이 도와주면 좋지만 냉혹하게도 그리고 다행이게도 이건 단 한 명이라도 괜찮다. 그게 타인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 자신이 내게 해주는 말이어도 사람은 힘이 난다.
의지라고 굳이 무언가를 붙여야 한다면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한 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 한 맘. 을 먹은 나를 칭찬하는 거. 그거면 충분하다. 그거면 우린 충분히 열렬히 노력한 거다. 그러니 해보자. 용기 내보자.
요즘 나는 밥을 먹을 때 '아, 저 음식을 삼켰을 때, 이러저러한데'라고 생각한다. 토했을 때 어떤 괴로움일지, 토사물의 모양, 그 비린내를 아는데 토하지 않고 열심히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내가 너무 좋다. 눈물 나게 행복하다. 그 괴로운 일을, 그 수순을 밟지 않아도 돼서, 토하는 지옥에서 빠져나온 내게 내 인생 모든 걸 걸고 손뼉 친다.
요즘 나는 내 몸에 대해 통통하다느니 뭐라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두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