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에게서 승리한 알렉산드르 1세의 영광
붉은 광장의 뒤편이자 크렘린 성벽 바깥쪽으로 긴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아직 겨울인 탓에 정원은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새하얀 눈에 덮인 모습 자체로도 경이로움을 뽐내고 있다.
이 정원의 이름은 알렉산드로프 정원. 바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1세의 이름을 딴 정원이다. 모스크바의 중심지인 크렘린과 가까이 위치한 정원이 그 이름을 딸 정도이니 러시아 역사에서 알렉산드르 1세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만큼인지를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1세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나폴레옹으로부터 조국 러시아를 지켜내고 더 나아가 러시아를 서구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의 치세 초기에는 대학을 설립하여 교육을 육성하고 언론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등의 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치세 중의 가장 큰 라이벌은 자유주의의 화신이자 자유주의의 물결인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태어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처음에 러시아와 프랑스와의 관계는 순조로운 편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영국의 숨통을 조이고 전 유럽을 그의 발 아래에 두기 위해 실시한 대륙봉쇄령으로 인해 러시아가 큰 경제적인 타격을 입게 되자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생존을 위하여 대륙봉쇄령을 깨게 되었고 이게 분개한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하여 원정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두가 그 결과를 알고 있듯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실패하였고 그로 인하여 유럽의 변방에 머물렀던 러시아의 위상은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는 그의 몰락을 가져왔고 러시아는 승전국으로서 유럽 사회에 자리잡게 된다.
물론 승리의 영광은 그 당시 러시아의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1세에게 돌아갔고 그의 치세는 더 견고해졌다. 알렉산드로프 정원에 있는 그의 높은 동상이 그의 위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은 하나의 단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에 대한 반감이 자유주의에 대한 회의로 전이되었는지 아니면 나폴레옹을 상대로 거둔 승리에 도취되었던 탓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치세 초기 자유주의 성향의 모습을 보이던 알렉산드르 1세의 치세는 차르 중심의 전제주의 즉, 반동 체제로 돌아서게 된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들에게도 이어져 이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