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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넙죽 Jan 24. 2023

구소련 시대의 흔적, 베데엔하

철의 장막에 가려졌던 그시대

구소련시대의 번영, 베데엔하


 모스크바 북쪽에는 베데엔하라는 곳이 있다. 소련 시대에 농업박람회장으로 쓰였던 곳인데 현재는 많은 이들이 주말에 시간을 보내러오는 커다란 유원지처럼 조성이 되어있다. 날씨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고리키 공원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것을 보면 원래 굉장히 인기있는 곳인것 같다. 내가 사는 지역과는 역시나 거리가 조금 있기 때문에 큰 마음을 먹고 나와야 하는 곳이지만 모스크바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날이 좋고 체력이 괜찮은 날을 골라 방문했다. 힘들게 방문한 곳에서의 경험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만큼 슬픈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아쉬움이 특히나 마음에 오래 남는 사람이다.  아내는 그런 마음도 집착이라고 말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루 하루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을. 모스크바의 삶도 벌써 6개월 가까이 지나버렸으니.  



 베데엔하의 정문을 보니 역시나 아름답다. 러시아의 공원은 정문에서부터 사람들 압도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제부터 당신을 일상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인도합니다.'라는 일종의 메시지 같다. 정문의 윗부분은 밀을 들고있는 남녀의 황금상으로 장식되었다. 한쌍의 황금상들은 수확을 이루어낸 농민의 모습을 상징하며 이곳이 원래 농업박람회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신론이었던 공산주의 영향 때문인지, 과거에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농업의 여신인 데메테르나, 북유럽신화 속 풍요의 여신 프레이야가 아닌 직접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의 모습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신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인 현대의 건축물 답다.  



 정문을 넘어  베데엔하 안으로 들어간다. 황금빛 조각으로 장식된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더운 날씨 탓인지 분수에 발을 담그거나 웃옷을 벗고 들어가 무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시원해보이기는 하였으나 분수물이 그다지 깨끗해보이지는 않아서 그들과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수를 지나면 이제야 과거 박람회에서 쓰였던 굵직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과 함께 아름다운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박람회라고 하면 큰 체육관이나 미술관의 실내공간을 활용하거나 공터에 간이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소련은 박람회를 위한 건물을 지어버렸다. 그것도 아름다운 건물들을. 정말 농업박람회에 진심인 나라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지금은 첨단산업에 많은 관심을 두고 기초산업인 농업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하지만 농업이야말로 국가 자체를 지탱하는 기간 산업이다. 나 또한 소련하면 로켓이나 우주선 등의 우주산업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지 농업을 위해 이렇게 심혈을 기울였을 줄은 몰랐다.


  식량 안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업은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고 대내적으로는 정권의 안정성과 관련이 있다. 상대적으로 농지가 부족한 중동 국가들에서 주식인 밀의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정권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배불리 먹고 산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보면 소련 시대까지만 해도 농업은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었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젠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베데엔하에 세워진 건물들 중 소련시대 소속국가들을 상징하는 곳들이 있었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 현재는 독립국가연합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다. 지금의 러시아도 그 영토와 국력이 가늠이 잘 가지 않는데 해체 이전의 소련의 규모와 힘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냉전 시대를 살지 않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당시 소련의 크기와  힘을 짐작하는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냉전 시대 소련의 정 반대에 위치에 섰던 진영의 국가였던 한국인이 이렇게 소련의 한복판인 모스크바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만큼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겠지. 정말 어릴때는 소련은 미지의 국가였던 것 같다. 반공교육의 흔적이 남아 있던 시기였어서 그런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철의 장막이 거치고 만난 소련의 후신, 러시아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오히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때로는 인생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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