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는 냉혹했던 그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는 당연히 표트르 대제이지만, 초기 러시아 역사의 스타는 단연 이반 뇌제이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그가 이룬 업적은 엄청났지만 또 불같은 성정을 가진 탓에 과오도 많아 뇌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표트르 대제 또한 성정이 불 같기로 유명했다고 하니 신기했다. 이쯤되면 당시 러시아의 권력자로 성공하기 위한 기본 자질인가 싶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두 차르 모두 든든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해 러시아 정국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점도 같다.
사실 두사람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지만 모두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다. 우선 이반 4세는 자신에게 대든 아들 황태자 이반을 자신의 손으로 때려죽인 일화는 유명하다. 표트르 대제 또한 자신의 다른 성향을 가진 아들 알렉세이와 계속 갈등을 겪다가 알렉세이가 역모에 휘말리자 그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그에게 고문을 가했다. 황태자 알렉세이는 가혹한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표트르 대제 또한 이반 4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아비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차르 중 한명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이반 뇌제이다. 모스크바에서 꽤 규모가 큰 공원인 콜로멘스코에의 작은 언덕에는 예수승천성당이 있는데 이반 뇌제의 아버지인 바실리 3세가 뇌제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곳이다.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주위가 탁트여보이는 경관이 시원하다. 처음은 후계자에 대한 차르의 사랑으로 시작된 곳이지만 지금은 시민들에게 넓게 개방되어 있다.
눈이 부시게 새하얀 성당을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그 곁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이후 이반 뇌제의 삶을 보면 성당의 아름다움이 실은 눈부신 서글픔처럼 느껴진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들이 자신의 자식에게도 너그러운 아버지가 될 수는 없었는가. 이반 뇌제가 그 아버지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받았는지는 사실 자세히 알 수 없다. 옛날 일이고 또 남의 집안일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때려죽이지는 않았지 않는가.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인격적으로도 훌륭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능력있고 명망 높은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자긍심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벽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들에 대한 다정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들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언젠가는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볼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