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시대 많은 지도자 중 한국인에게 기억되는 대표적인 인물은 스탈린이다. 한국전쟁과 냉전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철권통치로도 유명한 그는 사실 러시아가 아닌 소치와 그 국경을 면하고 있는 국가인 조지아 사람이다. 히틀러가 독일출신이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말 만큼이나 충격이다. 처음에는 사실상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삶은 여러번의 기회와 그의 기지로 점점 중심부로 향하게 되었다. 레닌 사후 지노비예프나 트로츠키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가 정권을 차지한 것 또한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주로 숙청이나 선전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생전에 권력의 정점에 서있었다고 하여 사후에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 듯하다. 모스크바 시내 곳곳 어느 곳을 가던 레닌의 동상을 만나보기는 쉽지만 스탈린의 흔적을 만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러시아의 제1국립묘지라고 일컬어지는 크렘린 벽 묘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그의 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거대한 묘를 가진 레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레닌은 공산주의의 상징이고 민중을 귀족들로부터 해방시킨 혁명가이지만 스탈린은 러시아인들에게 단순한 독재자로 남아있는 것일까.
니 스나유(알 수 없다)
스탈린 치세와 관련해서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신관에 위치한, 전체주의의 희생자들이라는 이름의 이 야외 전시물은 아주 이색적이고 효과적으로 스탈린 시대를 표현했다.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으깨놓았는지 스탈린의 코는 뭉개져있었고 그런 스탈린의 뒤로 소련시대 유형소인 굴락을 형상화한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라고도 불린 굴락의 벽 안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새긴 조각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전체주의 안에서 모두를 위한다는 미명과 국가 권력 아래에서 죽어간 이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전체주의라는 시대의 광기와 그 중심에 섰던 스탈린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