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국의 왕실은 왜 사랑받는가

버킹엄에서 윈저까지

by 넙죽

영국의 왕실이 사랑받는 이유


내가 런던에 방문한 날에 해리 왕자의 결혼식이 있었다. 런던 시내 곳곳에서 해리 왕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모두가 왕자의 결혼 "로열웨딩"을 전 국민의 축제처럼 즐기고 있었다. 단순히 왕가의 결혼식인데 잉글랜드 사람들은 왜 저렇게 즐거워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다. 왕가라는 것은 현재 민주주의 사회와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데 어쩌면 구시대적인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왕실이 영국에서는 이렇게 사랑받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왕실의 노력들을 살펴보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다른 영국의 왕실이 그들의 국민들에게 이토록 사랑받는지.


윈저성과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현재의 영국 왕실은 윈저 왕가라고 불린다. 런던 근교에 있는 왕실의 거처인 윈저성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사실 영국 왕가의 이름은 윈저가 아닌 작센 코부르타 고타라는 독일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영국 왕가의 혈통은 독일계에 더 가깝다. 이는 스튜어트 왕가의 직계 혈통이 끊어졌을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스튜어트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영국에서 왕가의 혈통이 닿아있는 독일의 하노버 가문에서 왕을 모셔온 것이다. 이때 왕가의 이름도 하노버였다. 하노버의 왕가의 마지막 여왕은 빅토리아 여왕인데 빅토리아 여왕 사후 그녀의 아들이 즉위함에 따라 남편 독일 출신인 알버트공의 가문 이름을 따 작센 코부르타 고타라는 더 독일식의 이름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왕가의 명칭이 영국식인 윈저로 바뀌게 된 데에는 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1차 세계대전이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주적은 독일이었다. 한 차례 큰 전쟁을 치른 영국 국민들은 독일이라면 치를 떨게 되었는데 정작 왕가의 혈통과 이름 자체가 독일계이니 왕가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영국 왕실이 다른 왕가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인다. 여타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진 왕가였다면 국민의 여론은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영국의 왕가는 달랐다.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5세는 왕가의 이름을 영국인들에게 익숙한 윈저로 바꾸어 왕가의 이름에서 독일적인 색채를 지움으로써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윈저성 라운드 타워(미들 워드, 성의 중간 부분)


그 이후 왕가의 행보도 주목할만하다. 왕실의 구성원들 자체가 그들이 일반인과 다른 특권층이라고만 생각하기보다는 왕실이기에 보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왕가의 혈통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도 군에 자원입대해 병역을 성실히 수행하는 등 왕가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왕가의 거주지, 윈저성의 스테이트 아파트먼트(어퍼워드, 성의 가장 위쪽)


왕가에서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는 하나 그들의 생활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예산도 만만치 않아 국민의 세금으로 왕실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왕실의 유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왕실의 존재만으로도 왕실 유지비용을 뛰어넘는 관광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영국에 가면 왕실 관련된 관광지들은 환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3만 원에서 4만 원을 가뿐히 넘을 정도로 비싸다.


해리 왕자의 결혼식이 있었던 윈저성의 세인트 조지 채플(로우어 워드, 성의 아래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 관련 여행지들은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런던에서 한 시간 정도를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윈저성 앞에는 성에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입장하는 데에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다. 버킹엄 궁전도 마찬가지이다. 근위병 교대식 때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살아있는 여왕이 사는 장소이라는 요소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여왕이나 왕자들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니 그럴 법도 하다. 물론 그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버킹엄 궁전과 여왕의 근위대


또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왕가의 존재가 국민들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는 시각들도 존재한다. 사회 전반에서 국민들 간의 이견이 존재할 때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때때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권위와 무게감을 왕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가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왕실의 큰 어른으로써 온 국민의 어머니로서 가지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적인 권력과 떨어져 있기에 국민들이 큰 거부감 없이 왕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왕실 또한 구시대적인 존재라는 인식에 탈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왕실은 당분간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결혼한 윌리엄 왕자나 해리 왕자를 보아도 영국의 전통적인 상류층인 어퍼 클래스 출신이 아닌 중산 계급인 미들 클래스 출신에서 그 짝을 찾음으로써 영국 왕실이 구시대적이고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단박에 깨 주었다. 심지어 최근에 결혼한 해리 왕자의 짝인 매건 마크리의 경우, 미국에서 유명한 배우이기는 하지만 영국 사람도 아니며 흑인 혼혈에 이혼 전력이 있는 사람인데도 영국 왕실에서는 큰 잡음 없이 자신들 왕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전통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왕실에서 보이는 이러한 파격적인 모습들은 사회의 분위기 또한 보다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고여있지 않으며 스스로 국민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왕가의 구성원들 있는 한 영국의 왕실은 그들의 국민들에게 계속 사랑받을 것 같다.






keyword
이전 01화여행의 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