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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메이커 헨리 8세

리즈 성에서 그의 흔적을 찾다

by 넙죽

헨리 8세는 단순한 스캔들 메이커였을까?


수많은 이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사람을 스캔들 메이커라고 한다. 영국 역사에도 그런 남자가 있었다.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이다. 헨리 8세는 아버지인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영국의 왕이 되었다. 헨리 8세는 차남이었지만 장남이자 형인 아서가 일찍 죽고 왕위가 그에게 넘어갔다.


리즈성 안에 있는 헨리8세의 흉상. 수번의 결혼 끝에 그는 행복햇을까


그러나 형이 그에게 넘겨준 것은 왕좌만이 아니었다. 형의 부인이었던 캐서린이 곧 그의 아내가 되었다. 형수였던 캐서린의 집안이 스페인의 유력한 왕가 아라곤이었기 때문이다. 형수인 캐서린 사이에서 헨리 8세는 장녀인 메리를 낳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시녀 앤 볼린과 재혼한다. 헨리 8세는 앤을 사랑한 듯 보였지만 앤 볼린 또한 아들을 낳지 못했다. 오로지 차녀 엘리자베스만을 남겼을 뿐이다.

헨리 8세는 사랑했던 그녀에게 죄를 물었고 앤 볼린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헨리 8세는 아들을 낳기 위해 재혼했고 마침내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에게서 비로소 아들 에드워드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결혼을 이어갔다. 이후 세 번의 결혼을 더 하며 또 한 명의 아내의 목을 자르고 또 한 번 이혼 한 다음에야 그는 캐서리 파아라는 여인에게 정착한다.


캐서린 사이에서 낳은 메리


헨리 8세는 이성을 좋아하는 단순한 호색한이어서 총 여섯 번의 결혼을 한 것일까. 실상은 이렇다. 헨리 8세의 아버지 헨리 7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장미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거쳤다. 장미전쟁은 왕실의 혈족들인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전쟁이었다. 왕위를 위해 왕위를 얻을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귀족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결국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7세가 승리해서 튜더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자란 헨리 8세는 가문이 어렵게 움켜쥔 왕좌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가문을, 왕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계자가 필요했다. 여러 번의 결혼을 통해 아들을 얻은 후에도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수많은 여인들을 곁에 두고 높고도 강력한 왕좌에 앉았던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뒤를 이은 왕들 중 튜더 왕조를 아니 영국을 빛나게 한 것은 그가 바라고 바라던 아들이 아닌, 사랑했던 여인 앤 볼린 사이에서 낳은 딸 엘리자베스였다.


어렵게 얻은 아들 에드워드 하지만 그는 병약해 일찍 요절했다
영국의 전성기를 연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가 머물렀던 별장, 리즈 성


런던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리즈 성은 헨리 8세가 머물렀던 성이다. 이 곳은 또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성이라는 별명이 있는 곳이다. 실제로 가보면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워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다른 성들과는 다르게 작고 아담해 돌아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이곳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랄까. 이곳에 머물렀던 헨리 8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누군가를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왕권을 위해 끝없이 싸우느라 고단해진 자신의 몸을 잠시나마 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존귀한 자리에 올랐고 많은 여인들과 결혼을 했지만 누구보다 고독한 사람은 헨리 8세였을지도.


리즈성은 숲속에 안긴 듯 매우 고요하다
성 주변은 매우 고요하고 평화롭다
리즈성의 성문
리즈성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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