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92
아기를 낳고 나서 오랜 기간 시도를 해봤지만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우리 아기는 자연스레 분유수유의 길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분유를 하루 3시간 간격으로 약 8번 정도 먹었고,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수유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제 14개월 차가 된 아기는 밤잠을 자기 전, 딱 한 번의 수유만을 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분유를 먹는 것도 곧 완벽히 끝난다는 의미!
흔히들 갓난아기의 냄새를 맡으면 혹은 작은 아기의 냄새를 맡으면 분유냄새가 난다고들 하는데, 우리 아기에게서는 더 이상 그 분유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유식이 분유의 양보다 많아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분유냄새가 조금씩 옅어지곤 했는데, 이제 분유수유가 영영 끝이라니 뭔가 시원섭섭하다.
매일 43도로 끓여놓던 물, 그 옆에 있는 분유통 그리고 젖병.
조금씩 조금씩 아기 때 쓰던 물건이 사라지고 다른 것들로 대체되고 있다. 곧 있으면 분유통과 젖병도 우리 집에서 사라지겠지!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 아기에겐 이렇게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처음엔 '분유만 주는 것도 벅찬데, 이유식을 시작하면 어떡하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겁을 먹었는데, 하다 보니 아기도 조금씩 변화에 적응해 나가고 나 또한 몸이 자연스레 움직이게 된 걸 보면 '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어른이 먹는 밥을 같이 먹는 날도 오겠지? 그때는 이유식을 먹는 지금을 추억하겠지!' 하고 생각해 보니, 지금도 또한 너무 아기아기한 순간들임에 틀림없다.
이제 곧 찾아올 아기가 더 이상 분유를 먹지 않는 날에, 우리 가족만의 조촐한 파티를 열어봐야겠다.
수만 가지 음식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는 아기를 위해 말이다.
오늘은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아흔두 번째 날이다.
남편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시간까지 아기와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후시간을 보내는 건 지금까지 별반 다를 바가 없었고, 오늘 내가 혼자 해야 할 일은 <아기 식사, 목욕, 놀기, 분유수유하기, 양치시키기, 재우기>가 남아있었다.
식사와 목욕 그리고 놀기를 마치고, 아기가 피곤해할 시간이 되어 마지막 분유 수유를 하기 위해 아기에게 젖병을 건네주었다.
젖병을 잽싸게 받아 쪽쪽 마시는 아기를 보니, '얼마 전만 해도 내가 젖병을 잡아주지 않으면 분유도 먹지 못했는데, 이제 혼자 두 손으로 젖병을 딱 잡고 의젓하게 먹네!' 하는 생각에 뭔가 기쁘면서도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순간들이 항상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그때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끼며 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늘 느낀 이 감정으로 다시금 각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똑같은 것 같은 하루하루도, 결국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워할 순간이 될 거야!' 하며 말이다.
분유를 다 먹고 난 뒤 아기의 양치를 시켜줄 때, 위의 감정을 되새기며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양치를 아기에게 맛 보여주었다. 평소 같으면 양치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양치라는 게 이렇게 신나는 것이었나!'하고 느끼게끔 해줬더니, 잘 내밀지 않던 혀도 계속 내밀어주어 혀까지 오래 닦아줄 수 있었다.
마지막 할 일인 양치까지 마친 아기는, 나와 함께 장난을 치며 놀다가 이내 곧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아기와 둘이 보냈던 저녁시간은 이처럼 후회 없이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아서 나 역시도 기쁜 마음을 지닌 채 아기가 자는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도 '잘 와줘서 고마워!' 하고 꼭 안아주며,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감에 감사함을 느껴보았다.
특별할 것 없어도, 아기 덕분에 자주 웃고 잦게 행복했던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