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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Aug 24. 2022

죽음이란 : 임사체험(NDE)으로 엿보는 죽음

22 Ⅱ. 죽음에 대하여 ⑤-3

임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

생물학적 죽음이 단지 육체를 벗어나는 사건일 뿐, 존재의 끝이 아니라는 설명은 죽음으로 소멸되는 육체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는 게 임사체험이다. 죽음에 대한 연구가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도 임사체험에 대한 객관적, 학술적 데이터가 쌓이면 서다.


임사체험은 말 그대로 죽음과 근접한 상태(near-death)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을 말한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죽음을 체험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 물을 수 있겠지만 엄연히 의학적 ‘사망’ 상태에서 겪는 일이다. 심장이 멈추면 10~20초 안에 뇌파(electroencephalogram)가 일직선이 된다. 즉 심장과 뇌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 호흡이 멈추고 동공반사가 없어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가 내려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라 임사체험을 ‘죽음체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학적 개입이 없으면 흔히 죽음으로 이어지는 임상적 상황’(*주1)으로 규정할 수 있다.  


나는 임사체험은 주말 오전 세계 각지의 신기한 이야기를 전하는 TV프로그램 같은데서나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겪는 특이한 체험, 그러나 증명할 수 없기에 미신적 요소가 개입된 경험 정도로 치부했다.


임사체험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1960년대 심폐소생술(CPR,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이 발전하면 서다.(*주2) 전 같으면 죽었을 사람들이 심폐소생을 통해 기적적으로 생환하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소생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근사 상태에서 경험한 일들을 공통적으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드물게 죽음 직전에 살아난 이들 중 임사체험을 한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더러 체험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했기에 분명한 경험과 생생한 기억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렸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의학의 발달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이들이 획기적으로 많아지고, 의학적 죽음 상태에서의 체험에 대한 증언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면서 학문적 연구 가치가 있는 현상, 즉 실재하는 현상으로 주목받게 된다. 인류 역사에 과학이 등장한 이래 가장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던 죽음 체험이 의학의 발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임사체험이 밝힌 가장 중요한 성과는 뇌와 분리된 인간의 의식이 실재함을 보여준 것이다. 임사체험은 호흡과 뇌가 멈춘 상태에서 일어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육체적 사망 상태에서 인간이 무언가를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뇌가 만들어내는 의식 외에, 즉 육체와 분리된 의식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임사체험을 다룬 최초의 책은 1975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A. Moody Jr.)가 1975년 펴낸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이다. 레이먼드 무디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철학박사, 웨스트 조지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의학철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에 진학한다. 이후 조지아 주립 병원에서 법정 정신의학자(forensic psychiatrist)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죽음을 체험한 이들, 죽었다 살아난 경험을 했다는 이들을 만나 150여 개의 임사체험 사례를 수집한다.


이중 △의사들에게 임상적으로 죽었다고 판정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이들 △사고·중상·질병 등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죽었던 이들 50여 명의 체험담을 추려 연구내용을 정리해 쓴 책이 <삶 이후의 삶>(*주3)이다. 레이먼드 무디는 임사체험 사례들마다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면서 전형적인 임사체험의 요소들을 추려 아래와 같은 가상 체험담을 제시한다.

Photo by Chris Bukwald on Unsplash

어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육체적 고통이 절정에 달하면서 그는 자기의 죽음을 선언하는 의사의 말을 듣는다. 곧이어 종소리 혹은 사이렌 소리 같은 커다란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깜깜한 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음 순간 갑자기 그의 육신 밖에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여전히 생전의 주위 환경에 머물러 있으며 그는 자기 육신으로부터 떨어진 채 흡사 관객인 것처럼 자기 육신을 바라보게 된다. 의사들이 자기를 소생시키기 위해 애쓰는 광경을 그는 지켜보면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잠시 후 그는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직면한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한다. 그는 여전히 ‘몸’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조금 전 그가 벗은 육신과는 크게 다르고 상이한 능력을 지닌 것이다. 이윽고 새로운 일이 발생하는데 다른 세계의 인물들이 나타나 그를 도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그보다 먼저 죽은 친척과 친구의 영혼과 만나고, 또한 그가 일찍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랑으로 충만한 따뜻한 영혼, 말하자면 ‘빛의 존재’가 눈에 보이게 된다.

빛의 존재는 언어를 통하지 않은 채 그에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평가하도록 요구하고 일생 동안 겪은 중요한 일들을 단숨에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게 한다. 바로 이때 즘 그는 자신이 일종의 장벽이나 경계선, 명백히 지금까지의 삶과 다음 삶 사이의 구분을 의미하는 한계선에 직면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야지 아직은 죽을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그는 이미 다음 생을 어느 정도 경험했기 때문에 지구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에 그는 기쁨, 사랑 그리고 평온함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그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는 자기의 육신과 다시 결합하여 되살아나게 된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그는 자기의 체험담을 주위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납득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세상에서 겪은 일화를 알맞게 표출할 만한 적당한 어휘를 그는 발견할 수가 없다.

또 그의 체험을 듣는 사람은 으레 비웃기 때문에 그는 이내 입을 닫고 만다. 그러나 죽음 체험은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사생관과 삶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변모하게 된다.


임사체험 연구는 1990년대 들어 의학박사 제프리 롱에 의해 더 풍부해진다. 제프리 롱은 ‘임사체험연구재단(Near Death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임사체험 사례를 수집하는 웹사이트(NDERF.org)를 운영하고 있다. 10년간 1300명의 임사체험자를 연구한 결과물을 <죽음 그 후(Evidence of the afterlife), 제프리 롱 & 폴 페리, 2010 에이미팩토리>라는 책으로 소개했다.

제프리 롱의 연구진들은 ‘임사체험 척도(NDE Scale)’를 개발했는데, 그 뒤로는 관련 설문을 통해 체험자들을 한 번 더 검증하는 과정도 거친다. 제프리 롱이 사례연구를 통해 추출한 임사체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는 12가지다. 괄호 안은 각각의 요소를 경험한 임사체험자들의 백분율이다.


1. 유체이탈 경험(Out-of-body experience, OBE), 즉 의식이 몸에서 분리된다. (75.4%)

2. 모든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고조된다. (74.4%)

3. 감정이나 느낌이 매우 격렬하고 대체로 긍정적이다. (76.2%)

4. 터널로 들어가거나 터널을 통과한다. (38.8%)

5. 신비롭거나 눈부신 빛과 만난다. (66.4%)

6. 신비로운 존재들, 죽은 친척이나 친구들 등과 재회한다. (57.3%)

7.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60.5%)

8. 주마등처럼 삶을 회고한다. (22.2%)

9. 비현실적인 영역을 접한다. (52.2%)

10. 특별한 지식을 접하거나 알게 된다. (56.0%)

11. 경계나 장벽을 만난다. (31.0%)

12.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몸으로 되돌아온다. (58.5%)


제프리 롱은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람들의 체험이라고 강조한다. 체험자들의 사례는 집단 무의식이나 학습된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으로 경험한 정황 증거라는 것이다. 레이먼드 무디가 먼저 제시했듯 임사체험담에는 체험자의 성별, 나이, 속한 문화나 인종, 종교 등에 관계없이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다.


과학에서 어떤 개념의 실재를 확인하려면, 단 한 번의 관찰이나 실험으론 부족하다.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해 여러 차례 독립적인 관찰과 실험, 비교검토(cross-checking)를 수행해야 한다. 제프리 롱은 이전에 여러 연구자들이 수행했던 연구결과와 자신과 자신의 연구원들이 수행한 연구결과가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얘기한다.


제프리 롱 역시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 비과학이란 편견을 갖고 있던 전형적인 과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사체험을 연구하는 현재도 자신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학자’임을 강조한다. 그는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밝힌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로 변했다. 굳어진 콘크리트처럼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나의 과학적 세계관이 다른 말로 하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과학’의 영역이라고 규정한 그 작은 원 안에서 세상을 보려 했던 나는, ‘실!제!사!람!들!’의 경험을 목격했다. ‘내가 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의 기준으로 이미 연구한 데이터도 다시 의심해보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1300개 이상의 사례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면서 이 책에서 제시한 9개의 사후생의 ‘증거’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9개의 증거들은 하나의 ‘진실’을 향해 수렴된다. 그것은 바로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제프리 롱이 제시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p68~76


1.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이 그토록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임사체험, 즉 의식이 없거나 사망한 상태에서 그토록 체계화된 생생한 체험을 한다는 것은 기존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2. 임사체험자들이 유체이탈 상태에서 보고 듣고 지각한 것은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3. 어떤 형태의 의식도 있을 수 없는 전신마취 중에도 임사체험이 발생한다.

4. 신체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도 임사체험 중에는 선명하게 볼 수 있다.(*주4)

5. 주마등 혹은 파노라마처럼 삶을 회고하는 내용 중에는 체험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실재했던 일도 포함된다.

6. 임사체험 중에 만나는 존재들은 대부분 이미 사망한 사람들이다.(*주5)

7. 어린아이의 임사체험 내용과 성인들의 체험 내용은 놀랍도록 닮았다.

8. 문화권과 언어권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일관성을 보인다.

9. 임사체험자들은 종종 그 체험으로 인해 인생 자체가 바뀌게 된다.



*주1 : 레이먼드 무디의 정의


*주2 : 지금 같은 방식의 심폐소생술이 확립되기 전까지, 즉 1960년대 이전의 심폐소생술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말 그대로 심장을 꺼내 주무르는 형태로 진행됐다. 가슴을 째고 심장을 꺼내 마사지했는데, 환자를 살리려는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균 감염 등 그 방식의 한계 때문에 환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다 기도에 공기를 넣은 뒤 흉부를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이 정착하면서 전 같으면 죽었을 환자들이 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환자의 10~25% 정도가 근사체험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셔윈 눌랜드의 책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2008, 세종서적>를 보면 의대 3학년 시절 대학병원 실습 병동에서 저자가 실제 행했던 심폐소생술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킨 남성의 가슴을 메스로 절개하고 ‘촉촉하면서도 따뜻한 젤리를 쥔 듯한 느낌’으로 심장을 힘껏 마사지하지만 환자도 자신도 피범벅이 됐을 뿐, 환자는 살아나지 않는다.


*주3 : 인용한 내용은 시공사가 1995년 출간한 판본에서 발췌했다. 2007년 도서출판사 행간이 펴낸 <다시 산다는 것>도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이다.


*주4 :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꿈에서도 이미지를 보지 못한다. 평소처럼 꿈속에서도 미각, 후각, 청각 등의 감각은 경험하지만 시각적 체험은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근사체험 상태에서 완벽한 시각적 이미지를 경험해 제시한 사례가 있다. 2004년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내가 죽던 날>에서 소개된 근사체험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 체외이탈을 경험한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사례를 전한다. 이 여성은 체외이탈 상태에서 처음 시각적 이미지를 경험하고 자세히 묘사하는데, 실제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결혼반지나 머리 모양으로 자신을 인지한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p.70


*주5 : 임사체험자들이 체험 도중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먼저 사망한 친지들인데 때로는 죽은지도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 회의론자 중에는 임사체험을 ‘소망투사’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들의 임사체험 사례로 반박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가장 보고 싶은 이들은 부모일 테지만, 살아있는 엄마 아빠를 임사체험 도중 만난 아이들은 없다. 교통사고에서 부모나 형제, 자매가 자신보다 1초라도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에나 체험 중에 이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런 체험을 한 아이들은 앞서 죽은 이들의 소식을 모르는 상태였다. 임사체험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어렸을 적 사망해 그간 존재를 몰랐던 동기를 만나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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