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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아는] AI 시대의 정체성

대체가 아닌 확장, 경쟁이 아닌 공존

by 있잖아

AI의 등장은 인간의 일과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라는 불안은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AI는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확장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강화하며, 어떻게 AI와 공존할 것인가다.




# 기계가 잘하는 일: 데이터와 패턴

AI는 이미 인간보다 잘하는 분야가 뚜렷하다.


- 패턴 인식: 의료 영상 진단에서 AI는 이미 사람보다 빠르고 정밀하다. 예를 들어 구글의 DeepMind가 개발한 AI는 안저 사진에서 50여 종의 안과 질환을 안과 전문의와 맞먹는 정확도로 판별한다.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암세포를 찾거나, X-ray에서 미세한 이상을 감지하는 능력은 사람의 눈이 놓칠 수 있는 신호를 찾아낸다.


- 대규모 연산: 인간은 엑셀 수천 행을 다루는 것도 벅차지만, AI는 수십억 건의 거래 기록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금융 사기를 감지한다. 월가의 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항공기 설계 시뮬레이션은 이미 AI 기반 초고속 연산에 의존하고 있다.


- 자동화된 반복 업무: 고객센터 FAQ, 회계 데이터 입력, 생산 라인의 품질 검수 같은 업무는 AI가 피로 없이 24시간 정확하게 수행한다. 아마존 물류센터의 컴퓨터 비전 기반 로봇은 수천만 개의 상품을 실시간으로 식별·분류한다.


* AI는 속도, 정밀함, 반복성이 필요한 영역에서 사람을 대체한다.




# 인간이 잘하는 일: 맥락과 의미

그러나 AI가 쉽게 넘을 수 없는 벽도 있다. 맥락, 가치, 상상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 문제 정의: AI는 답을 잘하지만 무엇을 묻는 것이 중요한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야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 맥락 이해: 데이터만으로는 문화적 뉘앙스와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AI 번역기는 문장을 정확히 옮기지만, 문화적 풍자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어색한 결과를 낼 때가 많다.


- 윤리와 책임: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 '누구의 책임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는 옳고 그름을 가치적으로 따질 수 없다.


- 창의적 상상력: AI가 예술 작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발명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힘이다. 피카소의 입체파,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같은 혁신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는 AI가 따라 하기 어렵다.


* 인간은 가치와 방향을 결정하는 영역에서 AI와 구분된다.



#새로운 협업 모델: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

AI를 단순한 대체자가 아니라 증강 파트너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기계는 분석하고, 인간은 해석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협업 모델이다.


- 의료: 방사선과 전문의는 AI가 수천 개 영상을 분석해 제시한 의심 병변을 검토한 뒤, 환자의 병력·생활습관·가치관을 고려해 최종 치료법을 결정한다. AI는 세밀한 눈, 의사는 종합적 판단자가 된다.


- 교육: AI 튜터는 학생 수준에 맞춘 학습 자료를 실시간 제공하지만, 교사는 정서적 코칭과 동기부여에 집중한다. AI는 데이터 기반 멘토, 교사는 사람을 움직이는 코치가 된다.


- 경영: 경영자는 AI가 제시한 시장 예측 시나리오를 참고하지만, 기업 문화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최종 의사결정은 사람이 내린다. AI는 수많은 가능성의 탐색기, 경영자는 방향의 설계자다.


* 이는 AI와 인간이 '기계는 분석', '인간은 해석'이라는 보완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 직업의 재편: 일자리의 소멸이 아닌 변형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년까지 8,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9,7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전망했다. 즉, 직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편되는 것이다.


- 감소하는 직무: 단순 데이터 입력, 콜센터 기본 상담, 조립·검수 같은 반복성 높은 사무·생산직이 빠르게 줄고 있다.


- 증가하는 직무: 데이터 분석가, AI 윤리 전문가, 프로세스 자동화 설계자(업무를 AI와 로봇으로 재구성하는 직무), 인간-기계 협업 디자이너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 변화하는 직무: 기자, 디자이너, 교사 같은 전문직은 AI 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전문가로 진화 중이다. 예를 들어 기자는 AI로 자료조사를 자동화하고, 디자이너는 AI 이미지 툴로 초안을 빠르게 만든 후 창의적 디렉팅에 집중한다.


* 중요한 것은 '내 일자리를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내 직무를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이다.



# 교육과 역량: 인간 고유 가치의 재발견

AI 시대의 교육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 창의성: 전혀 다른 개념을 연결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사고 훈련이 필요하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해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명하는 일은 인간이 한다.


- 비판적 사고: AI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이 데이터는 편향됐을 수 있나?'를 의심하고 재검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 협업 능력: 기술자, 기획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의 팀원과 AI를 활용해 소통/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 윤리와 공감: 기술의 설계와 활용이 사람 중심이어야 함을 이해하고 책임감을 갖는 감수성이 중요하다. AI를 ‘효율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 AI 시대의 경쟁력은 코딩 실력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 비판적 판단, 공감과 윤리다.




# 철학적 질문: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AI의 부상은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다시 소환한다.

- '인간만의 지능은 무엇인가?'

- '창조성과 윤리는 기계로 복제할 수 없는가?'

- '만약 AI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린다면, 인간은 여전히 최종 결정권자인가?'


하버드의 샌델(Michael Sandel)은 기술이 던지는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강조했다. AI 시대 인간의 역할 재정의는 결국 기술적 문제를 넘어, 존재론적 문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파트너다. 기계는 패턴을 학습하고, 인간은 의미를 해석한다. 기계는 효율을 극대화하고, 인간은 방향을 제시한다. 결국 AI 시대의 질문은 '인간이 불필요해지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더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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