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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Oct 27. 2024

100일 글쓰기

상담 선생님이 부담 없이 조금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 뭐든 해보라고 하셨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글쓰기였다. 거창하게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내 이야기를 재밌게 써낼 수 있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대학 입시 논술 수업이 아닌, 정말 내 얘기를 쓰는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에 등록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거창한 일처럼 느껴져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글쓰기 수업, 꼭 해보세요!"라고 응원해 주셨다. 다만, 가기 싫으면 땡땡이치고 숙제가 하기 싫으면 그냥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선생님의 응원 덕분에 마음 편히 도전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등록한 수업은 100일 동안 글 100개를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일 글 하나를 완성해서 온라인 카페에 올려야 했고, 2주에 한 번은 만나서 글쓰기 훈련을 받는 방식이었다. 글을 업로드하지 않아도 벌금은 없었고 잘 썼다고 상금이 있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 댓글을 달아줄 수 있고, 100일 완주를 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말이 수료증이지 그냥 상장이었다.) 우연히도 100일이 끝나는 날이 새해 첫날, 1월 1일이었고 나는 그날 수료증을 받았다.




억지로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평소대로 과제를 다 제출하게 됐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알딸딸한 정신으로 화장실에 앉아서 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글을 업로드했다. 이 글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름 인기가 있었다. 야근한 날이면, 집 가는 택시에서 집이 같은 방향인 상사와 함께 퇴근하는 심정에 대해 글을 써서 올렸다. 숙제에 목숨 걸지 않으려고 했지만,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걸 일부러 막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일 이외에 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곳이 생기니까 오히려 활력이 돌아 좋았다.


물론 매일 글을 쓰는 게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전혀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빈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고, 다른 날은 공들여 썼는데도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쓸 때도 있었다. 100일 동안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보면서 내 글과 비교하기도 했다. 모두 나와 같은 비전공자들이었는데, 그들의 글은 어쩜 그렇게 재미있고 흥미로웠던지. 기가 팍 죽어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와는 다르게, 이 불안감과 좌절감은 이상하게도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내 글을 좀 더 잘 쓰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은 즐거웠고, 잘 쓴 글을 보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자극받았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는 느껴본 적 없는 활력과 영감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근황


100일 수업이 종료한 다음에도 매일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당연히 하였지만, 한동안은 일기도 한 달에 두어 개 쓸까 말까 했다. 비록 매일 글을 쓰진 않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해서 요즘에는 브런치에 종종 글을 올리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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