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이 하기 싫은 이유는 간단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본적으로 잘 해내야 했고, 누구에게 미룰 수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못난 결과물로 창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욕심 때문에 일을 대충 끝낼 수가 없었다. 욕심도 참 많다. 사실 내가 야근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담 선생님 말대로 설렁설렁해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내 몸은 늘 하던 대로 움직였고,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더 해야지!"라는 신호가 울렸다. 그래서 복직하고 상담 3회 차를 모두 다녀온 후에도 집으로 잔업을 가져왔다. 여느 날처럼 집에서 야근을 하던 중에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오늘 일 얼마나 더 할 거야?"
"음... 세 시간?"
"그럼 한 시간 반만 더 하고 노트북 닫아."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을 줄이야. 상담 선생님도 내가 대충 한다고 해도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진짜 대충 하는' 게 아닐 거라고 말했었다. 그 말이 맞기를 바랐다. 그래야 앞으로도 세 시간을 더 하고 싶을 때 그 절반만 해도 별 일이 없을 테니까.
처음에는 불안했다. 원래 세 번 검토하던 것을 두 번만 하려니 실수를 놓칠까 봐 걱정됐다. 연차가 쌓인다고 실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가끔은 2024년을 2023년이라고 잘못 쓸 때도 있고, 읽어야 하는 메일을 놓칠 때도 있었다. 마치 항상 세 번 닦던 식탁을 두 번만 닦은 것처럼 찝찝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한 번 더 닦는다고 해서 식탁이 더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덜 닦는다고 그렇게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근황
이제는 뻔뻔하게 구는 데에 익숙해졌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틀린 게 있다면, 그건 업무 배분을 잘못한 거지.' 내가 오늘 밤에 할 걸 내일 아침에 한들, 세 번 보던 걸 두 번 본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