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친절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지만, 기대했던 ‘특별한 무엇’은 없었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번아웃에서 벗어나는데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
"률 씨는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몸도 마음도 편할 거예요. 스스로는 대충 한 것 같아도 남들이 볼 땐 그렇지 않을 거예요."
"버티는 걸 잘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안 힘든 건 아니에요. 남들은 진작 그만뒀을 환경에서도 버텨내는 건 스스로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률씨는 지구력은 좋지만 끈기는 부족한 사람이니 앞으로는 하기 싫으면 그냥 그만둬 보세요. "
"좋아하는 게 있어요? 요즘 관심 가는 거? 아, 글쓰기를 좋아해요? 그럼 작가 수업 같은 걸 들어보세요. 단, 결석하고 싶을 땐 결석도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땐 그만두세요. 일 말고 해보고 싶었던 걸 다 시도해 보세요. 잘하려는 부담은 내려놓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상담을 온 건데, 열심히 하지 말라니? 버티고 또 버텨서 자격증도 따고 입사도 한 건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래도 하기 싫으면 그냥 그만두라는 말, 잘하려는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말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나는 흥미를 금방 느끼지만 싫증도 금방 나는 편이라, 시작한 일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픈 날에도 굳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 시간을 채우려 할 만큼, 스스로 정한 일은 무리해서라도 지키려 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은 앞으로 내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을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무적 핑곗거리'가 될 것 같았다.
뭐든 시큰둥하기만 했는데, 유독 '대충 하라'는 말만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가 순수하게 좋아해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서 대충 해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못 하겠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전문가의 소견도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