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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요 Feb 16. 2022

정월대보름 다음 날 뜬 보름달

도어락 배터리와 보름달의 콜라보 


오늘 퇴근길을 이야기해보자면 좀 길다. 

길고 짧게 요약하자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고 전보다 더 행복해진 기분이 들었다는 것. 

사실 이번 주 내내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꽤나 피곤한 하루를 보냈고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피자나 햄버거를 먹으며 힐링을 할 생각이었다. 

피자를 먹기로 결정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갔건만 매장은 엄청 바쁜 상황이었고 30분 대기가 기본이었다. 이 안내도 사실 기다리다 듣게 되었고 칼바람을 맞으며 근처 햄버거 가게로 돌아갔다.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종종 갔던 곳이라 그곳에서 햄버거와 프라이를 샀고 역시나 꽁꽁 싸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계속 띠로 롱 소리만 내고 열리지 않았다. 

띠로 롱.. 삐삐. 띠로 롱 삐삐. 이놈에 띠로 롱 노이로제가 걸릴 거 같았다. 

쒯.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고 약간 멍해졌고 배터리가 방전된 건가 싶었다. 

사실 이 배터리는 예전에 친구가 갈아줬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2-3년 전이었던 거 같다. 오래 쓰긴 해서 이제 곧 갈아줄 때가 되었는데 싶었지만 하필 왜 그게 오늘이냔 말이다. 얼른 들어가서 손발 씻고 잠옷 입고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이게 웬 봉변이냐.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했고 다행히 집에 계셔서 올라와 봐주셨다. 하지만 본인도 직접 갈아본 적은 없고 일단 건전지를 먼저 사 와야 할거 같다고 하셨다. 건전지도 어떤 걸 사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무슨 수로 알까. 역시 우리의 구세주 네O버에 찾아봤지만 사실 자세히 나오진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 친구가 도와줄 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봤다. 

일단 편의점을 다녀와야겠다 싶어 나왔다. 시야가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앞을 봤는데 큰 보름달이 있었다. 아침에 들은 라디오에서 어제가 정월대보름이었지만 오늘 더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뜰 거라고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났다.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사실 예쁘다고 표현하기 미안할 만큼 감동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하루였다. 순수한 날것의 감정이 잊고 지낸 시간 동안 굳어있지 않았을까 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만약 오늘 이 일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저렇게 밝고 예쁜 달을 보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걸로 오늘 내 기분은 다 풀렸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게 생겨 뿌듯하기도 했다. 집으로 와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건전지 갈아 끼우는 건 쉬웠고 스스로 해냈다는 것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결국 식은 햄버거를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다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땐 당황하지 않고 해결해 나갈 수 있겠지. 

오랜만에 기록을 남긴 것에 만족하며 이제 좀 더 일상을 기록하는 걸 습관화해야겠다고 느낀 하루였다.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은 차고 넘치도록 많다. 지키고 싶은 것들 변화시키고 싶은 것들 버리고 맑은 마음으로 실천하고 싶은 것들로 인한 욕심만 커진다. 나에게 시간이 좀 더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 나름 멋진 어른이 된 거 같아. 도어락이 고장 나서 배터리 다되어 열리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 하나 배웠지 뭐야. 씅내지 않고 차분하게 일 처리 마친 나 이제 좀 어른이 된 거 같다. 

아직 세상 살이 배울 것은 차고 넘치지만 오늘은 이걸 배웠네. 작년에는 변기에 대해 배웠고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홀로 서기 10년 차는 뭐든 무섭지 않다. 

사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별거 없는 거 같다. 매일매일 새로운걸 하나 배운다는 마음으로 살면 뜻깊어지는걸. 사골국물처럼. 호로록. #2022 이선 일기 

사실 정월대보름을 생각하면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더 많아지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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