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실 그림책 공모전을 제출한 후에 긴장이 풀리면서 우울감이 몰려왔어요.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결정했고 그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하고 마음먹었는데 행복하지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다들 나보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 부럽다, 용기 있다, 멋지다 등등 좋은 말을 해주고 부러워하는 눈초리를 보내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지만 실상은 그렇게 멋지고 늘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한 치 앞을 볼 수 없기에 불안하고 늘 함께 있던 내 편의 존재와 소속감도 없기에 더더욱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나 홀로 공중에 계속해서 부유하고 우주에서 길 잃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직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맞는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불안감이 존재하기에 지난달부터는 파트타임 알바도 시작했어요. 알바라도 하면 수입이 생기고 어딘가에 살짝이라도 발을 담근듯한 소속감이 있으면 내 마음 한편이 안심이 될 것만 같아서요. 그리고 아이들도 다시 보고 함께 일하는 분들도 좋은 분들을 잘 만나서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유명한 작가님들도 파트로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저도 많이 듣던 이야기라 당연히 이제 갓 시작한 저는 병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괜히 울적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몰려왔던 건 사실이었어요. 계속해서 그림은 그려오고 있고, 최근 다시 Domestika에서 수업도 듣고 있습니다.
수업을 듣던 중 와닿은 말이 하나 있었는데요. 모작을 공부로 해보는 건 좋지만 결국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고 그 사람의 그림은 그 사람 만이 가지는 고유한 personality이기 때문에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Identity theft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도 동의했습니다. 물론 비슷한 종류의 그림을 그릴 순 있겠지만 내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앞서나간 작가들의 그림을 보고 배울 순 있겠지만 결국 이건 나를 찾아야 하는 길이예요. 그래서 멀고도 험하지만 가슴 뛰기도 한 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속에 있지 않은 것은 결코 표현할 수 없고 그릴 수 없어요. 그 감정과 감성이 내 안에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글로 그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어요. 우울할 때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없고 행복할 때 우울한 그림을 그릴 수 없거든요. 물론 저도 그리기 전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고 모으고 참고하지만 결국 제가 그리는 건 제 머릿속,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에요. 저의 감성과 결에 맞지 않으면 꾸준히 계속해서 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요. 그 때문에 상황과 감정에 그림이 영향을 많이 받고 감성과 감정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마음을 지켜내 가면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 무너지면 손에 잡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모두들 롤러코스터 타겠지만 안전바는 단단히 잘 잡고 있어요.
지난주는 김홍도 '씨름' 패러디한 그림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신윤복 작품들도 패러디해보고 싶고 나중에는 이걸로 캘린더를 제작하거나 콜라보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꾸준히 정진해 나가볼게요. 함께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