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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Feb 12. 2023

놀고 싶은 날

M SWIET PRODUCTIONS/GETTY IMAGES


걸그룹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노래 가사처럼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주말이 되어 밖으로 놀러 가는 게 귀찮은 날. 평소엔 설거지 같은 것은 바로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갑자기 하고 싶지 않은 때가 생긴다. 그럴 땐 억지로 하는 것보다 잠시 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당신의 몸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증거일 테니까.


행복한 날이 뭐라고 묻느냐면 그저 강박 없이 쉬는 날이라고 답하고 싶다. 중세 시대에 나태가 죄악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게을러지는 것은 그저 가난하거나 부자인 증거일 것이다. 죽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놀러 다닐 수 없다. 생존해 나가는 모든 것이 비용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현대판 하인들이 그들을 위해 청소, 요리, 운전할 테니 권태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그들 중간에 끼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하다. 돈 버는 일도 하면서 집안일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부지런해야만 하는 사람 중 하나인 나는 놀아야 한다면 모종의 결심이 필요하다. 직장에서는 눈치 봐가며 휴가를 내던가 주말이 가까워지면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이 기다린다. '노는 것도 일이다'라는 시쳇말처럼 원활한 놀이를 위해서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어릴 적 모 그룹 회장이 해외 출장 한 번 가려면 비서실에서 몇 달 전부터 많은 부서 직원들이 달라붙어 여행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이 놀라운 '의전'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해외 출장 계획도 세워보고 실제로도 다녀온 바로는 그 말이 맞다. 노는 이야기에 출장을 꺼낸 것은 요즘에 놀이가 그저 집에서 쉬는 것으로 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최소한 가족과 외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를 실행하려면 타임라인과 예산안을 기획해야 한다. 그 식당이 언제 문을 여는지, 예약은 받는지, 주차장은 확보되어 있는지, 평가는 어떤지 말이다.


놀이의 성격이 이럴진대, 계획을 세워 번 돈을 쓰는 것이 진정한 놀이인가 물어보면, 정확한 의미의 놀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진짜 놀이가 되려면 어린 시절의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놀잇거리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만족할 만한 놀이를 준비하지 못했어도 적어도 부모는 아이들에게 놀이의 부담을 주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주부들이 하는 말이 있다.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 그렇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도 일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식이 선호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밖에 나갈 필요도, 밥을 차릴 필요도 없는 스마트폰 음식 주문 배달 APP에 의존하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이상적인 놀이는 남들이 차려준 계획표 대로 비용 부담 없이 편승하여 재미있게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미묘하게 여기에는 자기의 욕망이 들어가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하와이를 가고 싶다고 하면 '알잘딱(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으로 누군가가 준비해서 나는 몸만 가는 것이 최고이다. 그런데 이런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인생이 많지 않으니, 비극이다. 대부분은 저 알잘딱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느라 출발하기 전부터 녹초가 된다.


제대로 놀고 싶은가? 나를 위한 알잘딱 역할을 수행하는 비서를 고용할 수 없다면 당신의 주말은 노는 것이 아니라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회계 담당 직원과 가족, 친구, 애인, 자녀를 위한 로드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비극이라고 불린다면 어쩔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소비를 강요하는 억압적 탈승화가 범람하는) 자본주의는 그래도 당신에게 종종 해외여행의 기회를 주곤 하지 않는가? 좁디좁은 이코노미석부터 시작해서 귀국하기 전 면세 한도를 꽉 채워 기념품을 사는 즐거움까지 더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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