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국집에 전화로 주문하면 생기는 일

by pathemata mathemata

가끔씩 집 근처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 일이 있다. 금요일 저녁같이 왠지 집에서 먹기 싫은데 그렇다고 나가기도 귀찮은 경우 택하는 선택지이다. 어쨌든 그날도 같은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켰다. 늘 먹던 걸로(as always)로 자동 주문되면 좋겠지만 역시 언제나 세트 몇 번인지 확인 후 주문을 시킨다.


비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약간 늦은 시간이 흘러 여느 때와 같이 같은 배달부가 집으로 찾아온다.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왜소한 체격에 50대 전후의 중년 남자이다.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배달 앱 쓰지 않고 전화로 주문하면 배달비가 안 나와요." 내가 주문할 때마다 이 멘트는 언제나 동일했던 것 같다.


오늘은 내가 내민 신용카드 결제가 단말기 오류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조금씩 짜장면과 짬뽕이 불어 가는 것이 신경 쓰일 정도로 잘 안된다. 배달원은 계속 단말기를 세게 두드리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데."라며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이 아파트에 배달이 하나 더 있다면서 내심 초조해했지만 아마 내가 현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 전까지 지치지 않고 단말기를 계속 두드렸을 것이다. 심지어 잔돈 있냐는 질문에도 그는 답을 하지 않고 카드 결제에 열중했다. 마치 세계의 멸망을 막을 방법은 카드 결제 성공에 달렸던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아내가 돈을 챙겨와 배달부에게 돈을 전달했다. 그는 아마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집 현관에 머물렀다. 그리고 현금을 쥔 채로 배달가방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 평상시의 상황이라면 현금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의 행동이 화가 났을 것 같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심정인지 몰라도 그저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저녁 식사는 예상대로 면발이 꽤 불어있었다. 탕수육도 약간 눅눅해진듯하다. 그날 비에 젖은 노면 때문에 오토바이 운전이 힘들어서인지, 혹은 배달 오기 전 들른 집에서도 카드 결제가 안돼 단말기와 실랑이를 벌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기다린 탓에 맛있게 잘 먹었다.


이 중국집은 전화 주문이라는 오래된 관습도 남아있지만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음식 그릇 수거도 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내려갈랬는데 하필 음식 수거를 하러 온 그 배달부와 마주쳤다. 나는 피하지 않고 이야기라도 붙일 겸 엘리베이터에 같이 탑승했다.


그는 짜장면을 꺼내며 웃는 낯으로 "배달은 전화로 하시면 돼요."라고 이야기했지만 막상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한쪽 귀퉁이에 꼭 붙어 벽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로 황급히 달려나갔다. 이번엔 내가 내놓은 음식 그릇 봉지를 들고 말이다. 여전히 비는 조금씩 내렸다. 내일은 그의 카드 단말기가 정상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이전 14화"사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