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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주행(夜間走行)

by pathemata mathemata

가끔 달리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그런데 내 삶에 규칙적 루틴으로 자리 잡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풀(full) 마라톤을 등록하고 나서 조금 결심이 섰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D-Day가 다가오니 일주일에 몇 번은 달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일주일에 최소 3번은 달리자고 다짐했다.


며칠 동안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여름처럼 더워졌다. 이상 열대야가 생긴 날도 있었을 지경이다. 평상시라면 이런 날씨에 밖에서 달리는 것은 더욱 하지 않을 일이다. 원래는 새벽에 달리려고 알람을 맞춰뒀다. 춘곤증 때문인지 몰라도 일어나는 게 힘들다. 그렇게 오늘의 달리기는 실패한 듯싶었다.


하지만 아내가 저녁에 달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박할 수 없어 저녁을 먹고 2시간쯤 시간을 흘려보내고 밤 9시가 되어 집 밖을 나섰다. 새벽이나 낮에 달려본 적은 있어도 퇴근 후에 달리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집 근처에는 남대천(川)이 있어 달리기에 꽤 적합한 환경이다. 생각보다 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30분만 달리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속도가 달라 조금 간격을 두고 천천히 달렸다. 분명 둘이 달리지만 달리기는 온전히 나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낮에 익숙했던 사물들이 다른 모습을 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온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서운 생각보다는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벌레들이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날씨는 아니다. 적당한 기온은 사바나에서 달렸을 조상들의 영혼과 가깝게 한다.


달리면서 마주치는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흐릿한 윤곽의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비행기 무덤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대 배경인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이 떠올랐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별빛과 달빛에 의지해 바람을 정면에 부딪치며 복엽기 속에서 홀로 사투하는 주인공을 생각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생텍쥐페리도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비행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https://youtu.be/EEutDrummXo?si=BoBjZO2OuD-fIWyZ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지상에서는 비행 중 기름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비슷한 일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야간주행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어느덧 약속했던 30분이 다가왔다. 달리기는 걷기로 바뀌었다. 내일도 이 시간에 달릴지 모르겠다. 적어도 오늘 스스로 정한 시간을 채웠기에 걸음걸이가 가볍다. 덕분에 집 앞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카페에 들러 아내와 달리기에서 태운 소량의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료수를 나눠 마셨다. 이로써 현대의 인간은 사냥 대신 먹기 위해 달린다는 것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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