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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진상

by pathemata mathemata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나 화를 의도하고 내는 일은 내겐 드문 일이니까. 이미 오늘 소박할 일정의 초반에 조금 균열이 움텄는지 모른다. 주말 낮에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늦잠을 자서 식당에 늦게 도착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조금 이른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근처 감자탕 집에서 식사를 했다.


이곳 식당은 쉬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사장님 내외도 우리와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우리 테이블 외에도 다행히 손님은 한 테이블이 있었다. 하지만 부담스럽게도 사장님이 바로 뒤에서 식사를 하는 바람에 눈치가 보였다. 아내와 나는 원래 먹으려던 볶음밥도 주문하지 못하고 밥 한 공기와 라면사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라면사리를 봉지째 주는 게 아니라 우동사리처럼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끓여 주셨다. 결국 볶음밥을 주문하는 것이 사장님 내외의 식사 연속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름의 배려가 결국 무위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텁텁한 입맛을 개운하게 리프레시 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페에 갔다. 카페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20대 여자 4명 정도 무리가 뒤따라 들어가려다가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우리가 들어가면 앉을 자리가 없어질까 봐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상황을 파악하고 아내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개인 블로그에 올릴 생각으로 잠깐 밖에 카페 외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카페 앞쪽에 손님 중 한 명이 부담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겨우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1분여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앞서 말한 4명 중 2명은 들어가고 나머지 2명은 나와 비슷하게 카페에 들어갔다. 아내는 유일하게 남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 메뉴를 주문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앞서 들어간 2명은 민첩하게 소지품을 두고 자리를 잡고 메뉴까지 선정하고 있었다. 4인용 자리의 남은 2자리에 내가 앉아버릴까 고민했는데 그 사이 남은 2명도 자신의 소지품을 채워버렸다.


이제 앉을 자리는 카페에 테이크아웃 손님용으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 등받이 없는 긴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아내에게 무척 화가 났다. 분명 먼저 들어갔는데 앉을 자리를 잡지 않고 메뉴를 골라서였다. 게다가 주문까지 그 4명에게 밀릴 뻔했는데 마침 사장님이 센스 있게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나는 화가 나서 테이크아웃해서 나가자고 했는데 아내는 천연덕스럽게 이 자리에서 먹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계속 구시렁대는 식으로 화를 냈고 아내는 이례적으로 내게 사과했다.


그렇게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사장님이 부탁하지 않았지만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내놓으면서 빈자리가 생기면 안내해 주겠다고 우리를 배려했다. 아마도 내가 심통 내는 것을 눈치껏 살펴본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자리가 나자 이후에 온 대기 손님을 물리치고 사장님이 그 자리에 우리를 안내했다.


이제 제대로 된 자리에 앉자 겨우 내 표정은 밝아졌지만 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알량한 블로그에 올린다고 사진 찍다가 뺏기게 된 자리인데 책임 전가를 아내에게 했고 그 옹졸한 투닥거림을 사장님, 혹은 나머지 예민한 손님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준 것이 후회스러웠다. 마흔이 넘었지만 어른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하루였다. 그렇게 쓸데없이 화를 내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나는 카페의 진상, 아니 아내의 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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