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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전기차를 만들었나?

by pathemata mathemata

최근 읽고 있던 월터 아이작슨이 쓴 거대한 벽돌 책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감상의 일부를 아내에게 전했다. 아내가 내게 물어봤다. "그러면 스티브 잡스가 뭘 만들었어?" 나는 그가 만든 여러 혁신적인 제품을 열거하려 했다. 애플 컴퓨터, 아이팟, 아이튠즈, 앱스토어, 아이폰, 아이패드 등. 내가 애플 컴퓨터가 왜 혁신적인지, 지금까지 그 유산이 전해졌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자 아내는 내 말을 끊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럼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다 만들었어?" 나는 다시 그가 스티브 워즈니악이 사실상 거의 혼자 만들었던 회로 기판 이야기와 제록스 사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에 대해 일부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내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인정한다.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의 AI 햄스터 동영상의 밈(meme)인 "궁금한 사람~ 물어본 사람~" 같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사실은 스티브 잡스에 '빙의'된 모습) 때문에 더 이상 아내가 듣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TiW_w55JGhs?si=lnDrh-sJQyB5QYoR

비슷한 예로 국내 현대사에 뜨거운 감자와 같은 논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발전했을까?" 어떤 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누군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종종 진영논리로 비화된다.


흔히 말하는 '위인'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꽤나 다양하다. 예전에는 영웅의 몫으로 돌린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이를테면 한 나라를 세운 사람은 이름에 남고 나머지는 역사에서 잊힌 인물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다양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칼 마르크스가 주창한 역사적 유물론에 영향을 받아 현대에는 영웅의 역사는 민중의 역사로 다시 쓰이곤 했다. 역사적 유물론은 경제적 기반과 생산 방식의 변화에 따라 역사가 필연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다분히 당대에 유행했던 다윈주의적(진화론적) 관점이기도 하다. 그 말은 곧 앞서 말한 영웅주의*와 대립된다. 즉, 어떤 인물이 역사의 물결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러한 인물이 출현한 셈이다. 즉, 영웅 아무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시대정신에 따라 그는 다른 인물로 대체될 수 있다.

*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정신(Zeitgeist)의 발현으로 '영웅' 나폴레옹을 찬양했던 것이 마르크스의 사상적 스승인 헤겔이었다. 확실히 마르크스는 스승의 변증법을 실천하기 위해 정반합의 반(反)에 선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페이팔 마피아로 유명한 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이다.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 따르면 역사는 시간이 지나면 발전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즉, 노력이 없으면 발전이란 없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번영 역시 현재 남아있는 유산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팍스 로마나(로마에의 평화)를 이끈 로마제국 붕괴 후 중세를 지나며 인류 역사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쳤다. 역사는 때로는 퇴보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기업의 성공 비결로 7가지를 꼽는다. 특히 그는 '유통'의 중요성에 대해 특별히 강조한다. 제품이 훌륭하더라도 마케팅이 훌륭하지 않으면 사장되기 때문이다. 피터 틸은 그런 의미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끈 테슬라 주식회사가 성공을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전기차(EV)가 내연기관을 대체할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세울 당시에는 전기차 시장이 보조금 지급이 끊기면서 거의 소멸 상태였다. 그는 그 진공상태를 이용해 자동차 회사 경험 하나 없이 뛰어들었다. 어쩌면 제정신이 아닌 셈이지만 결국 자신을 마케팅 도구로 활용해 성공했다.


1. 기술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시기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정치는 잘 모르겠지만 사업에 있어 CEO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마케팅하지 않아 시장에서 사장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CEO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만들었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었나?


정답은 아니요, 그의 유능한 직원들이 만들었고 공은 CEO가 가로챘다고 답할 수 있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이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한 명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열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장에 유통된 제품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볼 순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칼 마르크스도 성경을 인용해 말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시간이 지나면 발전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에 반대한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헌신적이며 결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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