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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Feb 21. 2023

글쓰기의 지루함


글을 쓰는 일은 고매하다고 여겨지는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로 천한 일이다. 읽는 것은 책장을 단지 열면 그만이나 작가는 펜이나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야 한다. 가까운 미래가 오면(ChatGPT 3.0 정도일 듯) 머신러닝으로 작가가 대체될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이렇게 수작업이 지속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지난날 먹을 갈아 오타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을 선배 작가들을 생각해 보며 한낱 스마트폰의 X 표 누르기가 귀찮은 나를 반성한다. 적어도 뇌 속에 흘러 다니는 생각이 자동으로 표기해 주면 좋으련만! 아 참, 그렇게 되면 작가 과잉의 시대가 되어 그제야 글 쓰는 일은 대중에게 천한 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귀찮은 일은 고매하게 보이는 법이니까.


오늘은 꽤나 글발이 안 받는 날이다. 멍하니 삼십 분사량 모니터를 쳐다보다 아이디어라도 얻을까 다른 인터넷 화면도 기웃거렸다. 시간은 대책 없이 흘러가는데 내 화면은 백지이다. 어쩔 수 없이 전에 썼던 낙서와 같은 글을 들춰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어째서 지금은 이런 느낌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글쓰기의 속도는 증가하는데 반해 감성은 퇴행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발생하는 감정 선의 하락곡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메마른 얼굴이 손끝에 투영되어 키보드에 표출되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유기체의 코딩이라고 부르고 싶다. 쉬운 예를 들면 작가가 쓴 각본으로 우리는 영화도 드라마를 보고 있다. 예수의 행적을 남긴 글과 마르크스의 글은 앙시앵 레짐을 뒤흔들고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같은 의미로 사사키 아타르는 글쓰기를 혁명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모든 글이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코딩을 잘 하는 프로그래머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뉘며, 전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의 글쓰기는 구글링해 남이 만든 코드를 복사를 남발하는 프로그래머 같다. 피카소는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 난 그저 누군가의 글을 그럴싸하게 모방할 따름이다. 그런데 필사를 계속하다 보면 좀 나아지는 것도 있으련만, 자기 연민만 강화되는 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라톤 완주라도 할 줄 알아야 문장 능력이 강화될는지도 모르겠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보면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와 대화를 한다. 언어로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글을 어찌어찌해서 직조하면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했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가는데 글 쓰는 사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글은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과 각종 플랫폼을 통해 너무나 쉽게 유통된다. (대부분 글에는 사진과 영상이 8할 이상이지만, 설명을 위해 글이 양념처럼 배여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 관객을 포함하여 최소 3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오늘날 글쓰기는 그저 소리꾼만 난무하다. 저마다 외치기만 하니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면, 주로 돈이 아닌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물론 포스팅 유료 광고도 있겠지만, 이런 직업으로서 인플루언서는 제외하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자신의 생존을 글로서 표현한다. 글쓰기는 재미가 없다. 특히 길게 쓰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진이나 영상에 밥풀 얹듯이 글을 살짝 올리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글은 길고 지루하게 써야 느는 법이다. 단어 공부만 한다고 문장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루하게 긴 글을 잘 읽다 보면 지루한 글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스킵(skip)과 2배속이 가능한 억겁의 영상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자막을 보는 것도 사치일 수 있다. 그래서 지루한 글쓰기는 아마도 지루한 독서처럼 계속 고독해질 것이다. 


지루한 글을 위한 관객은 정말 드물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적었듯이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려운 것이다(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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