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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Feb 20. 2023

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의 시간'은 드라마 제목(2007년 MBC)으로도 유명하지만, 해 질 녘 찾아오는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황혼의 시간을 뜻한다. 개와 늑대의 유전적 공통점은 99.96%로 교배가 가능한 친척이다. 성염색체 분석에 따르면 12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했다는데, 개는 인간이 주도한 근친 교배를 거치면서 유형성숙(幼形成熟, neoteny)*이 이루어졌다.

* 육체가 성장하는 유아기와 청소년기가 연장되는 방식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 두뇌도 계속 성장하여 뇌가 커진다. 또한 미성숙한 시절의 특성이 나타난다.


개와 인간의 친밀함은 20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반려동물이라고 칭하면서 중성화 수술, 다른 말로 거세를 일상화했기 때문이다. 개를 거세하는 이유는 개체 수 조절, 심미성 제고(성기 줄이기), 발정기를 없애 양육의 편의성 제고 등이다. 그 밖에도 개의 수명 연장을 말하기도 하는데, 유의미한 연구결과가 나온 바 없다.


생명체는 후대를 위해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이다. 그런데 인간은 거세를 통해 개의 유전자를 말살시키기 시작했다. 반면에 자연스러운 짝짓기 대신 강아지 공장 같은 야만적인 사육시설을 만들어 품종견을 대량 생산한다. 인간의 고상함을 위해 강제로 발정되어 임신을 반복해야 하는 평생 공장 밖을 나가지 못하는 어미 개의 모습은 철저히 은폐된다. 그리고 그 개들이 낳은 강아지는 상품으로 출고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은 아마 '개를 위해' 거세를 시킬 예정일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단어는 주인과 도살자의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양치기를 해치러 오는 늑대는 없다. 다만 자신의 소유물이 될 개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하고 감정을 못 느끼는 도구로 활용하려 드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 개가 죽으면 북유럽신화의 비프로스트 다리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평생 키우다가 죽은 개에 대한 인정받지 못한 슬픔이라는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을 호소하는 견주도 많다. 그렇다면 개는 정말로 '반려견'이 맞는가?


정작 개는 주인의 손에 의해 거세를 당하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자신의 의지와 달리,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신체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영구히 손상당한 개의 트라우마는 고려해 본 적은 없는가? 아기처럼 정성을 다해 평생을 먹여 살려줬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형(受刑)인이 행복한지에 대해서도 논해봐야 할 것이다. 죄수는 원형 감옥(판옵티콘)에 의해 성욕을 통제 당하니 본질적으로 개와 동일하다. 아마도 펫로스 신드롬은 자신의 무의식이 건넨 개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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