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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Feb 18. 2023

등산의 목적



이 글은 <등산의 목적(2016)>이라는 성인영화를 리뷰하는 글은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잘 지은 제목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참고로 영화 포스터의 여주인공은 레깅스를 입고 있지 않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와이프와 인왕산에 갔다. 인왕산은 서울 종로구 독립문역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바위산이긴 하지만 산세가 낮아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무악 어린이공원 근처에 주차하여 등산을 시작하면 입구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등산은 시작된다. 계단의 끝 등산로 초입에 있는 목 좋은 공터에 대체로 50~60대로 구성된 수십 명의 남녀가 모여 산악회 깃발 아래 음식을 나눠먹으며 떠들썩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들의 목적은 이날의 운동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이들을 지나 성곽길을 따라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의 등산 행렬이 이어졌다. 주로 20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산악회 회원들과 달리 집단 규모가 크지 않다. 남녀 커플이거나 동성 혹은 혼성 친구들의 무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물론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오운완, #인왕산등산, #등린이 같은 SNS 태그와 함께 말이다.


내가 20대였을 때, 즉 10여 년 전에 등산은 중년과 노년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국내여행 수요가 늘면서 등산인구는 급격하게 젊어졌다. 단풍색과 닮았던 등산복 일색이었던 산행 패션은 레깅스와 나이키 등 캐주얼한 운동복으로 대체되었다. 패션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것 같다. 20대들은 거추장 한 등산 스틱이나 등산화 없이도 자유자재로 편안하게 산행을 즐긴다. 한반도에 잊혔던 알피니즘*(?)이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일종의 사르카즘(sarcasm)인 걸 구태여 설명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 알프스에서 유래된 산악운동으로 등산 행위이며 등산 정신운동을 추구하며 종전의 고전적 등산 형태를 지양하고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등산 활동을 구현하려고 하며, 등정 자체의 가치보다 등반 루트와 그 내용 자체에 그리고 곤란성을 스스로 추구하여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한반도에서 등산은 순수 운동만을 위한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무수한 전문 산악회의 끝자락에는 사교를 위한 무언가가 기다린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먼저 산지가 70%나 차지하고 있는 척박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즉, 지평선이 관찰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눈을 돌리면 어디든지 산이 보인다. 산은 한국인의 삶의 터전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화전민들이, 지금은 자연인들이 깊은 산중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도 무수히 많다. 우리는 어쩌면 산을 타는 것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산 위에서 경험이 숭고한 경험이 될 수 없기에 한국인들은 여느 때와 같이 친구를 사귀거나 만나고 등산 후에 식사와 음주를 기대하는 것이다.


등산의 목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등산은 근력과 유산소를 활용하는 복합 운동이며, 꽤나 터프한 편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산악사고가 1.2만 건(소방청)에 달할 만큼 사고 빈도가 높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등산을 한다고 안전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전문 산악인을 포함한 등산에 진심인 이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등산은 적은 비용으로 친구를 만나는 장소, 즉 외로움을 극복하는 공간이다.  


다만, 등산이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거나 회사 단체 행사를 위한 용도로 쓰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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