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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스 Sep 20. 2020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며

좋은 회사란

평생 다닐 것만 같았던 첫 번째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나의 첫 회사는 누구나 들으면 어디인지 아는 곳이지만, 다들 나에게 왜 그런 곳에 다니냐고(?) 물을 만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떠올렸을 때 “좋은 회사”라고 이야기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연봉은 어떤 금액을 생각하든 그 이하일 정도로 적었으며, 그렇다고 회사 명성이 대기업과 같은 그런 곳도 아니었다.

산업 자체는 입사 당시에는 한참 뜨고 있었으나 이미 기울고 있는 곳이고, 앞으로 성장을 할지 그대로 가라앉을지 아무도 모르는 기업이다.


이런 회사에 왜 다녔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심지어 회사 선배, 동기, 후배들조차 “너는 왜 여기에 왔냐”는 질문을 하루에 다섯 번씩 받을 정도로.

그럼에도 그 회사를 다니게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우선 나는 취업 생각이 전혀 없던 학부생이었다.

전공도 사실 취업과 정말 관련이 없는 학과였고, 실제로 주변에 기업 – 사기업은 더더욱 – 에 취직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막연하게 나도 공부를 해서 어딘가에 가거나,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막학기에 집안 경제적 사정이 도저히 공부를 더 할 상황이 아니었고, 내 한 몸이라도 건사하기 위해서 취업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 당시는 이미 취업 시장이 포화상태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취직 자체는 쉽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주변 분위기가 취업을 우습게(?) 알았었고, 스스로도 큰 위기감이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며 사회 분위기는 급격하게 변화했고, 취업 시장에는 이미 너무나도 준비된 인재들이 넘쳐났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되지 않은 백지상태였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내게 취업 시장은 냉정했다.

가진 건 학벌과 영어와 제2외국어 점수뿐이었기에, 서류는 그냥저냥 몇 군데 합격할 수 있었고, 각종 인적성 검사도 쉽게 통과했다.

그러나 면접의 벽은 넘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 1차 면접을 통과하고 나서도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00 씨는 왜 고시를 안 했나요, 왜 로스쿨은 안 갔나요, 결혼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CJ 너네는 여성 친화적이라면서 이런 질문 왜 나한테만 하냐), 00 씨는 합격시켜도 그만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임원진은 저런 질문을 던졌고, 아니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그 벽을 넘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이 볼 때 내 이미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반듯하게 부모님이 하란대로 공부만 해서 엘리트 코스만 걷다가 일찍 결혼해서 안정을 추구할 것만 같은 그런.

실상 나 자신은 부모님 말 잘 안 듣고, 인생 계획에 결혼은 생각도 없고, 그런 보수적인 환경보다 재미있고 변화무쌍한 삶이 좋은데도.


어쨌든 그렇게 1년을 취준을 하며 느낀 점은 이 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계속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봐도 나 자신은 바뀌는 점이 없는데, 무엇이라도 해야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것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던 와중 최종적으로 전 직장에서 채용 전환형 인턴 합격 연락이 왔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네가 왜 여길 다녀?

들어오자마자 팀 선배가 내 학벌을 듣더니 한 소리 했다.

왜 여기에 왔냐. 너라면 충분히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다른 데도 원서를 많이 써라.

선배는 정말 그 이후로도 항상 나를 잘 챙겨주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말이 진심이었음은 잘 알았다.


나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다.

집안 경제 사정 상 더 나은 급여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거의 최저 시급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대로 다니기로 결심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계속 이야기했듯, 이대로는 정말 안 됐다.

차라리 여기서 몇 년 다니다가 중고 신입으로 가거나, 아니면 경력직 이직을 하지, 그대로는 도저히 취직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 기업이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좋은” 회사였다는 점.

그곳은 사람 때문에 나가지 못한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물론 진리의 팀바이팀 부바이부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너무 심한 사람들조차도,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서 정말 약한 정도였다.

회사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한 사건을 말해보자면,


거래처 직원이 맨날 실수해서 사고가 나는 상황.

팀장: 하.. 이 분은 맨날 이래서 어떡하냐.. 00야, 네가 좀 얼굴만 예쁘면 다냐고 말해봐.

사수(사원, 팀 막내): 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팀장: 어, 그래? 미안...

다른 이야기로 전환.


조금 팀장님 실드를 쳐보자면, 팀장님 딴에는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지 않고 기분 나빠하지 않게 슬쩍 말 좀 해보자는 취지이기는 했다.

여기서 좀 감동받았던 포인트는 말단 사원이었던 선배가 팀장님께 지적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그곳은 정말 수평적인 문화였고, 사람들 분위기 자체도 학부 시절 선후배 관계 같았다.


여성 복지도 좋은 곳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본인은 결혼도 임신 출산 계획도 없기 때문에 그런 혜택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사내 문화가 좋은지 여부를 따질 수 있는 척도는 되었다.

남자 직원도 아무렇지 않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회사에서, 너도 나도 가정이 중요한 회사에서, 집안일을 우선시한다고 눈치를 주거나 하는 문화는 없었다.

오히려 아프거나 집안일이 있거나 하면 다들 먼저 나서서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챙겨줄 정도였다.


그런 문화가 좋았다.

온실 속 화초였을지는 모르나, 어쨌든 온실 속에 있을 때는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다.

우선 회사가 정말 어려워졌다.

정말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경력 상 내가 더 이상 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부분을 서술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이 정도로 넘기고자 한다.)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를 다니고, 떠나기를 결심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정말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정말 스스로 행복했던 건 사실이었다.

인생에서 몇 안 되게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이 아니더라도 얻은 것도 많다.

회사 내에 자교 졸업생이 거의 없었던 탓에, 본의 아니게(?) 기회가 많았다.

원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와 연차에 비해 더 많고 다양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기회.

때문에 나는 취준생이었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직무를 경험하고, 적성을 찾았으며,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이번 이직이 운 좋게도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 SK, 이런 대기업이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 회사들도 정말 좋고, 멋진 기업들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고연봉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좋은” 회사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직서를 쓰고 사람들에게 인사 말씀을 드리며 좀 감성적이 된 김에 말하자면,

내 이십 대 중후반을 함께한 회사 사람들이 정말 꼭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남겨준 우리 회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행복했으면,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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