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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지음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어느 가을, 제주를 여행할 때 억새풀이 누렇게 파도를 이룬 언덕배기를 넘어서자 거친오름 아래 제주 4.3평화 공원이 빨간 동백꽃과 함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화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유령들의 웅얼웅얼 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고 나는 두려운 마음에 그릇 모양의 기념관 안으로 급히 숨어 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검은 벽면에 가득 찬 흑백의 사진과 영상을 보았을 때 그 어떤 공포가 송곳처럼 정수리를 파고 들었고 그 공간에서  나는 슬픔에 휘청거리고 때로는 분노에 손마디가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밝은 출입구쪽으로 걸어 나왔을 때 동백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고 있었습니다. 뒤미처 함께 따라 나오지 못한 어린 아이의 젖달라는 울음소리, 아이를 찾는 어미의 소리, 스무 해를 넘기지 못한 소년과 소녀의 울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 왔습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에서 학살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산자들의 애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의 이야기 입니다. 


수백의 검은 나무를 세워 죽은 자의 원혼을 풀고자 했던 다짐은 인선과 경하의 개인적인 의지였습니다.‘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바다 위 무덤’이 있는 어두운 풍경은 광주의 죽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경하의 악몽이었고 마흔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과거를 영상에 담고자 했던 인선의 작업은 어머니에 대한 애도였습니다.


결핍의 상처를 가진 두 여성은 오래전부터 우정 이상의 믿음과 환대의 관계를 굳건히 형성하며 이 소설의 서사를  전체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어머니 강정은의 굴곡깊었던 삶의 여정이 겹쳐지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제주 학살의 비극 앞에 서게 됩니다.




끊임없은 두통과 위경련에 시달리며 수신자 없는 유서를 써두고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했던 경하는 ‘지금 와줄 수 있어’라는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행 비행기를 오릅니다. 단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인선은 여덟살 먹은 동생과 오빠의 죽음으로 한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한을 풀기 위해 검은 나무를 세워 진혼의 묘비로 삼고자 했습니다.


실톱을 깔고도 엄마는 자주 꿈을 꿨어 숨을 죽여 몸서리치고 이따금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어. 


두 손가락을 잃고 3분마다 한 번씩 주사바늘을 찔러 통증을 느껴야 만 봉합이 가능한 그녀는 죽음의 섬에서 앵무새가 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통증에 대한 환기없이 온전한 치유가 불가능하듯이 제주의 4.3 역시 아픔을 지속적으로 느낄 때 우리는 결코 작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아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결국 앵무새 ‘아마’를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넌 경하는 대설과 강풍주의보가 내린 제주 산간지역을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타며 때로는 폭설과 강풍을 맞으며 죽은 가는 새를 구하기 위해 눈길을 헤쳐 나갑니다.


앵무새는 인선과 경하를 잇고 제주도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며 동굴에서 어미의 젖을 물고 죽은 아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또다시 결코 죽어서는 안될 생명체입니다. 


제주 중산간 신천리를 찾아가는 길은 현실의 세계가 지워지고 몽환적인 세계가 나타나 극단적인 고요 속에 오두막을 찾아가는 오직 한 사람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너무 적요하여 소설을 읽는 숨소리마저 두려워집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의 새들’처럼 하얗게 내리는 눈은 지상의 풍경을 백지상태로 돌려놓고 삼나무 숲을 헤쳐 나가는 경하의 비틀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휘날립니다. 


그리고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 인선의 오두막을 발견하지만 앵무새 ‘아마’는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죽어서는 안되는 생명이 죽자 작별의식은 매우 경건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그 어머니가 마련했던 ‘흰바탕에 작은 제비꽃이 귀퉁이에 수놓은 새것같은 손수건’에 앵무새를 감싸 아주 오래 된 팽이나무 아래 묻습니다.


혼자 있는 중산간의 오두막은 적막의 적막 속에서 경하 혼자이고 창 밖의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또 내립니다.


눈.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끊임없이 지나간 기억을 들추는 시간의 환생이며 현실을 뿌옇게 지우고 환상을 불러오는 기묘한 결정체입니다.


칠 십년 전 부모님과 오빠, 여덟살 먹은 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 눈송이가 묻은 얼굴을 하나하나 닦아낼 때 제주에 ‘수십 포대의 설탕을 부어놓은 것 같은 눈’ 이 내렸고 경하와 인선이 국수를 먹을 때 서울에도 ‘고운 소금가루 같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경하는 이런 말을 합니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서울의 봉합수술 전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인선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제주의 오두막에 나타나는 장면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수많은 흰새들이 소리없이 낙하하는 것 같은 함박눈’ 이 내리는 중산간에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죽은 것들이 살아와도 아무런 저항없이 서사의 줄기를 따라 이끌려 갑니다.


불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오직 촛불에 의지한 채 두 사람은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든 것들을 적멸하고자 했던 학살의 광란 속에서 할아버지는 팽나무 아래이서 대살 당하고 아버지는 생포되어 목포항으로 끌려가고 막내 남동생은 배와 턱 아래에 총구멍이 난 채 죽어가야만 했던 야만의 시대.


이 모든 것을 열 세살 어린 눈으로 지켜봤던 인선의 어머니.  강점심.


‘작은 체구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어머니는 어릴 적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불 자리에 실톱을 깔고도 ‘숨을 죽여 몸서리치고 이따금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한 긴 탐문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오랜 시간 어머니가 수집한 낡은 신문과 빛바랜 흑백사진들. 두 사람은 촛불 아래에서 칠 십 몇 년 전에 일어난 제주의 비극을 발견합니다. 창 밖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직 ‘작은 혼같은 빛’에 기대 제주도에서 일어난 학살의 증언들을 읽어가며 어머니의 오빠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하나둘씩 보여 줍니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과거의 고통과 작별하지 않고 두려움없이 섬과 육지를 오가며 행방불명된 오빠의 최후를 찾아 나섭니다.


때로는 제주방언 그대로 채록된 구어체의 문장을 들려주며 그 어떤 역사적 기록물보다 더 사실적인 증언들을 들추어 냅니다. 허구의 소설 속에 사실을 담은 증언록은 등장인물의 대화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서사의 풍미를 더해 줍니다.


그리고 오빠의 행적에 따라 다다른 마지막은 참혹한 양민학살의 동굴이었습니다. 해방 공간의 짧은 시기에 조선의 산하는 온통 학살과 죽음으로 난도질 되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눈 내리던 학교 운동장과 햇빛에 반짝이던 모래 사장에서 공항 활주로의 땅 밑에서 대구 경산 코발트 광산 및 인근 가창골에서 무수한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학살의 규모와 책임자 처벌, 유해발굴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이 모든 죽음으로부터 작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아직 학살의 규모와 책임자 처벌, 유해발굴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이 모든 죽음으로부터 작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내를 건너 몰살되고 불탄 마을로 찾아가 ‘불길이 번졌던 자리에 앉아 보고 들보가 무너지고 재가 솟구치던 자리’에 앉아 봅니다. 추도의 시간은 작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작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사랑의 약속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작별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흰 눈 속에 누운 채 빨갛게 타오르는 성냥개비의 불꽃을 보며 그렇게 고요히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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