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생에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향할 것이다. 사람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덜 탄 곳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가야 할 순간에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할 테다. 글을 쓰고 그림을 끄적일 수 있는 아이패드와 핸드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모카만 사들고 단출하게 출발하겠지.
아마 마지막 날인만큼 불면증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숨도 잠들지 못한 채 동이 트기 전, 차디찬 새벽의 입김을 느끼며 기차에 몸을 싣겠지. 기차를 타고 떠나는 길은 늘 그렇듯 설렐 테다. 바다를 볼 생각에. 그저 파랗고 드넓은 소금물일 뿐인데 그게 왜 그리도 좋은지. 정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도착하겠지.
바다를 볼 때면 머리가 멍해진다.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기원을 알 수 없는 바다 내음이 코 끝을 간질이면 잠들었던 온 감각이 눈을 뜨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도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을 멍하니 보다 보면 어느새 주변의 다른 것들은 희미해지며 아득한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 눈이 멀어버린 채로 그렇게 바다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보다가 글을 끄적이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주변이 캄캄해지면, 그제야 날 아껴주던 사람들에게 나의 마지막 문장들을 보내겠지. 이 사람에겐 이런 문장을, 저 사람에겐 저런 문장을, 적잖이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은빛 달이 나를 비출 테다.
이 날 만큼은 회색빛이 아닌 은빛이 세상을 비췄으면 좋겠다. 조금은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드는 회색빛 대신, 너무 환하고 밝은 노란빛 대신, 늘 적당한 은빛이 도는 달을 좋아했다. 은색을 발광하는 원시 지구의 파편 조각 아래서 모든 걸 마무리하고 다시 바다를 보며 모든 기록의 마침표를 찍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