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레드밀 Apr 02. 2024

자기만의 방

여성 창작자의 자립을 옹호함

버지니아 울프는 19세기말 20세기초를 살면서 여성의 사회참여와 자립의 어려움과 중요성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그녀는 여성 예술과와 소설가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를 강가에서 사색하며 한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을 에세이로 썼다. 이 에세이 속에서 자신이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는 과정과 구상한 소설의 주인공인 또 다른 작가의 이야기가 (지극히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얽혀있다.  


여성이 자유로이 배울 수도 없고, 도서관조차 편하게 갈 수 없던 남성 중심의 세상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자기만의 방이다. 그녀가 결혼 후 넓은 농지를 포함한 농가 주택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아 그녀의 자기만의 방은 그저 방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 공간은 사방이 막힌 방일 수도 있고, 하늘이 열린 곳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혹은 '왜 너는 그런 걸 하지 않거나 하니?' 하는 의구심 어린 시선조차 보내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 자유로운 공간은 창작을 위한 사색을 이어가며 가정과 사회에서 부여하는 성의 역할을 잊을 수 있는 깊은 성찰의 공간이다. 이를 위해 창작자는 이런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경제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자기만의 방은 공간을 갖고 그를 운영할 수 있는 경제력이 된다. 나는 이걸 자립이라고 부르고 싶다.


구체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공간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공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분명 사업공간을 꿈꿨다. 처음 운영했던 사업체가 교습소였다면 이번엔 조금 다르게 화실로 운영하려 했다. 교습소나 학원은 교육청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학원은 운영자의 학력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전문 강사를 고용해 운영할 수 있다. 반면 교습소는 1인 운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운영자가 전문학사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한다. 그 밖에도 2종근린생활시설 중 학원으로 용도가 명시된 건축물에 입점해야 한다. 이게 은근히 까다롭다. 오피스텔에서는 불가능하고, 인근에 유흥시설이 있어도 안된다. 화실은 이보다는 훨씬 단순하다. 별다른 학력을 요구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교습소처럼 인허가가 까다롭지 않다. 화실을 운영하려 했던 것부터 이미 수업보다는 내 그림에 집중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은 결혼 전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업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의 학력과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그녀를 연애히기 좋은 매력적인 여성으로 만들었지만, 결혼 후의 삶에는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네 명의 아이를 낳고 그녀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여성,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선택한 자기만의 공간이 낡은 호텔의 19호실이었다. 소설 속 수전은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점점 나락으로 빠져 버리지만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자기만의 방에 대한 욕구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예술가였거나 창작자였거나 육아를 하는 동안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있다. 본인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더라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연주를 하고 싶고, 춤을 추고 싶은... 언제든 다시 할 줄 알았던 과거의 ~~였던 예술가들 말이다. 혹은 이전에 배우지 못했지만 꽤나 진지하게 독학으로 작업을 하며 경제력을 갖는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애석하게도 이 사회는 경력단절 예술가을 위한 지원이나 그들의 재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 그리는 그림이 이 세상에 나와 경제력을 갖게 하는 데에도 큰 관심이 없다. 공모전이나 출판 등의 기회가 있지만 독학을 했던 이들에게 경력단절로 교류가 끊긴 이들에게 모두 접근이 쉽지 않다. 가능성이 조금 더 있는 그들의 지원보다는 오히려 취미의 확산 경험의 확산으로 문화예술지원사업이 치우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원데이 클래스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그저 맛이나 보게 하는 단순한 수업을 반복적으로 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취미미술이라고 해도 제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다. 물론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정규수업을 모집하기도 한다.


 내 자립의 첫발인 자기만의 방은 온전한 나를 위한 공간이자 적어도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대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전 08화 나만의 아지트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