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이 습작이 되지 않기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참으로 꾸준함을 요한다. 하루하루 성과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가끔은 아둔해 보일정도의 우직함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진 미덕 중 가장 훌륭한 면모다. 하루하루 성과에 흔들리지 않아햐 한다는 것은 매일 글쓰기를 마음 먹었는데 어제 못썼다고 오늘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다. 채우지 못한 어제는 어제로 두고 오늘을 다시 채우는 것, 한 달을 못 채웠다고, 일 년을 방치했다고 해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우연히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화실을 찾아간 게 시작이었다. 입시미술을 오래 했지만 그 과정이 꾸준한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간에 미술뿐 아니라 입시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고 흔한 10대의 방황기도 있었다. 그러다 재수까지 하게 됐고, 재수하는 동안 나는 정체되어 있던 내 그림의 돌파구를 발견했다. 그렇게 다시, 그림에 흥미를 느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대학에 가서 그림을 안 그리게 될지.... 디자인과에 진학해도 예상보다 그림을 안 그린다고 한다. 나는 디자인과도 아니고 도예과에 진학하게 됐다. 공예과가 싫지는 않았는데 그림을 맘껏 그리지 못해 아쉬웠다. 졸업 후엔 공예 관련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글쓰기를 했다. 대학시절까지도 글쓰기는 나름 나의 자부심이었는데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자 어려워지더라.
어쨌든 창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렀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만들거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의 창작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때로 요리나 베이킹을 하며 달랬고 한동안은 재봉틀로 소파커버를 만들고 아이옷을 만들며 스스로 손재주에 감탄했다. 그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게 따로 있다는 걸.....
2018년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만큼의 감을 찾는 연습도 필요했고 나를 표현할 소재도 필요했다. 사진을 보고 인물화를 그리거나 꽃그림을 그리거나 하면서 감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묘수업을 하게 되니 손이 기억하는 그 감을 찾아냈다. 그림 그리기의 연습은 나름 순조로웠다. 그리고 싶은 주제도 떠올라 펜화로 여러 장을 그렸다. 이 소재를 캔버스에 그리려 하니 다시 채색에 대한 연습이 필요해졌다. 50을 목전에 두고도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연습을 한다. 10년 전에도, 15년 전에도 난 뭔가(아마도 베이킹이나 재봉틀이었을 거다)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5년 전 브런치에 처음 글을 저장했을 때도 글쓰기가 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하는 일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하고 싶었던 걸까? 지난 내 삶이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냥 남들이 하니까 뭐 그러려니 하면서 흘러가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종종 처절히 고민하고 선택하며 내 선택을 책임지려 애쓰며 살아왔다. 내가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더 지나고 보니, 남들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었는데, 아마도 난 외로웠나 보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 나처럼 홀로 걷고 있어 외롭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나에게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것들을 난 말해주고 싶은 데, 사실 이 또한 오만이라는 것도 안다. 나처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긴 하다. 한편으론 그리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고 프로가 되지 못하고 시도하다 만 내 여러 습작들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아직 모자라고 부끄럽지만 과감히 나를 드러내려 한다. 내 그림을 선보이고 브런치라는 고마운 플랫폼을 통해 내 글을 게시한다.
47년간 삶의 경험이 인풋이었고, 창작에 목말랐던 내 사소한 작업들이 습작이었다면, 이젠 보다 적극적으로 아웃풋을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이번생이 그저 습작으로 끝나기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