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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Apr 16. 2024

글로 먹고 살기

 삶이 나에게 레몬을 준다면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것이다.

나의 첫 직장은 잡지사였다. 공예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인터뷰기사를 주로 썼다. 승진도 없고 보수도 늘지 않는 일을 5년 동안 했다. 마감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불평했지만 일주일 정도 힘든 기간이 지나면 다시 여유로워졌다. 월급 못지않은 중독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고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마음만 먹음 지방도 갈 수 있었다. 글 쓰는 일이 겁 없이 쉬웠다. 학교 다닐 때 글짓기 상을 받았던 경험으로 내내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성공습관인가 보다. 대학에서도 리포트과제는 늘 A+였다. 누구에게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스스로 믿고 살았다.



회사는 달랐다. 잡지에 글을 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틀림이 없어야 했다. 첫 기사를 차장님께 냈을 때 교정을 받았다. 누군가 내 글을 고친다는 게 언짢았지만 생각보다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인터뷰기사라 인터뷰한 내용을 장황하게 쓴 긴 문장을 간추리고 문단마다 주제를 명확하게 모았다. 그 덕분에 고문으로 계시던 당시의 편집장님께 칭찬을 들었다. 입사초기 그 잡지사엔 일제강점기부터 일간지 기자였던 고문님이 데스크를 봐주셨다. 초보답지 않은 문장력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나 혼자 완성한 게 아니라 면구스러웠다.


잡지사 일은 단순한 일도 많았고 제목 날짜 이름만 바뀌는 반복적인 기사도 많았다. 일이 반복되며 나는 글쓰기가 점점 싫어졌다. 회사에 원망도 많아졌다. 분야를 굳이 나눠, 나를 고루한 인터뷰이만 만나게 하는 것도 싫고 지루한 기사를 나에게 미루는 선임에게도 불만이 쌓였다. 나는 그때 한 번도 내 불만을 똑바로 주장해보지 못했다. 회식자리에서 투덜거린 걸로는 전혀 업무에 반영되지 않았다. 나는 내 의견을 똑똑하게 말하는 법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30년 가까이 나를 봐온 친구가 몇 달 전에 '네가 싫다고 말하는 게 정말 싫은 건지 최근에 알았다'는 거다. 나는 싫다는 말도 웃으면서 했었다. 정색하고 싫다고 말하면 나쁜 년 소릴 들을 까봐... 그랬나 보다. 인정욕구였고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다. 그렇게 지치고 지쳐 그 일을 그만뒀다.


역시 내가 잘하는 일이 맞다. 10년 넘게 일을 쉬고 아이를 돌보다가 객원기자로 복귀해 얼마간 일을 했다. 20대 때의 투덜이가 아닌 나는 싫은 일을 명확하게 싫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 잡지사는 기울어 가고, 부당함을 거부했더니 미련 없이 잘렸다. 뭐 이해관계가 안 맞으면 그만두는 게 맞지. 더 이상 글이 벌이가 되는 일이 있을까 싶은 지점에 브런치 작가를 시작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건 올해 첫 목표였다. 1월에 작가신청서를 내고 한 번에 승인을 받았다. 지금 4개월 째고 아직 한 푼도 수익을 내보지 못했다. 내 글이 훌륭한데 뭔가 안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삶은 내가 다양한 기회를 줄 뿐이고, 그걸 받느냐 차버리느냐는 늘 내 선택이다. 블로그에 상품리뷰를 올린 것도 10년이 넘었지만 블로그협업이라던지 상품을 제공받는 리뷰는 한 번도 안 써봤다. 내게 꼭 필요하지 않거나 내가 선택하지 않을 상품을 제공받아 남의 구미에 맞는 리뷰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의 글을 내 글인척 올릴 리도 없다. 순전히 조회수로 아주 적은 애드포스트를 받고 있다. 삶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주어진 레몬이다. 내가 쓰기 싫은 글은 내 글이 아닌 거짓말 같은 글이다.


쓰기 싫은 글들을 쥐어짜 내며 글쓰기에서 멀어졌던 경험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글을 써나가는 것은 나만의 레모네이드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다시 글쓰기의 재미를 찾고 좋은 글로 성숙해지면 언젠가 결실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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