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첫 사치이자 투자
내가 작업실을 얻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공간을 알아보다 보니 내 예산으로는 상가에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업무시설 오피스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덜컥 가계약금을 보냈다.
잘못된 일이었을까?
이곳은 건축물대장상에 업무시설이 아닌 주거시설이었다.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그야말로 눈이 돌았다. 오피스텔 원룸을 무수히 봤으나 본 중에 사이즈도 크고 고층이라 햇빛도 잘 들었다. 월세가 조금 비싸긴 했지만, 에어컨도 새 거고 청소 외엔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옵션으로 침대 책상 등이 딸려 있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가계약금을 보내고 보니 이곳이 주거전용 원룸 아파트라는 거다.
전입신고를 하면 주거지에서 할 수 있는 사업자를 낼 수 있다. 교습소는 불가능하고 공방이나 화실은 가능하다. 전입신고를 할까 했더니 남편이 전입신고를 반대한다. 3인가족으로서의 세금 혜택이 안 그래도 적은데 더 적어질 수 있다고 반대한다. 뭐 나도 1년 계약기간 동안 세대를 분리하고 이후 다시 업무시설을 알아봐야 하나 싶으니 좀 심난하긴 하다.
전입신고를 하는 게 화실을 운영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 첫 번째 목적인 그림을 그리겠다는 목적을 떠올렸다. 10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 혼자 쓸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구비된 작고 알찬 주방이 있다. 그래 뭐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우선 나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수강생은 내가 1년 그림을 열심히 그려보고 이후에 다시 생각해 보자.
오히려 좋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내 과장된 낙천일까?
집에서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침대 옆 작은 책상뿐이었다. 유화를 그리기엔 침실이라 부담스럽기도 했고 우선은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더욱 내 공간이 아쉬웠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이렇다 할 만한 사치를 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기 전 신혼시절 남편과 해외여행을 몇 번 간 게 아마 사치라면 사치일까? 그것도 남편이 주도권을 쥔 채 선물을 받듯 소극적으로 남편의 결정을 따랐다. 남편의 유학시절에도 긴 여름방학 미국 내 로드트립을 다녔지만, 그건 드는 돈에 비해 사치보다는 모험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 이 공간을 내 생에 첫 사치이자 나를 위한 투자로 삼아보려 한다.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자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고, 이를 통해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정도의 부를 창출하기는 원한다. 글쓰기까지 포함한다 해도 사실 월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그럼에도 해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1년 동안 내가 부려보는 사치다. 그래봤자 가방 한개 값도 안된다고 우겨본다.
입주하고 한 일주일은 청소만 했다. 작업실로 사용하기에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해 입주를 결정하긴 했지만, 20년이 다되어 가는 아파트다. (그래 오피스텔이 아니다) 닦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닦아낸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시작했는데, 콧구멍만 한 주방만 네 시간이 걸렸다. 대충살자 하면서도 큰맘 먹고 갖게 된 나만의 공간인데, 깨끗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한번도 안닦은 것 같읃 욕실 천장을 닦고 변기 아래 백시멘트를 새로 바르고 모든 가구들의 누렇게 변한 수납장 문들을 최대한 닦았다. 페인트를 칠하거나 시트지를 바르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 공간을 가진 것이지 청소나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3~4일은 청소만 했다. 5일째 되던 날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이 공간을 둘러보며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여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으의 공간이다.
하하하하 소리내서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덧글.
새로운 교습소나 화실을 운영하는 과정에 대한 연재를 이어가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우선 이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실컷 누려보려 한다.
앞으로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는 예상할 수 없으나 계속 연재를 이어가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