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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Apr 05. 2024

고딩 딸의 아침밥 투쟁

아침밥이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 아침에 아무것도 안 먹고 가겠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걱정했고 나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나인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3년 전 나는 아침을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뭘 선언씩이나 해야 하나 싶지만,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고 별로 먹고 싶지 않으면서도 먹는 게 더 낫다고 믿는 누군과와 함께 지내면 늘 먹을지 말지를 물어보고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게 소모적인 일이라 여겨졌다. 때마침 간헐적 단식의 이점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나는 더 이상 이 논쟁을 피하고 싶었다.


간헐적 단식의 효과였을까? 간헐적 단식의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나는 이 식이가 내게 잘 맞는다고 느껴진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이 삭제된 것만으로도 삶이 한결 정리된 듯 편안했다. 이 공복의 시간이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아침을 먹은 때보다 먹지 않았던 시간이 더 길다. 어쩌다 보니 초등고학년시절부터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등교시간이 빨라지고 아침을 먹고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아침 만원 버스로 통학하는 것으로도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 만원 버스 안에서 배가 아픈 건 정말 괴로운 상황이었다. 통학길 중간에 버스에서 내러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것도 난감했고 지각을 하게 되는 것도 수순이었다. 그래서 아침밥을 안 먹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학교 도착까지 비교적 안전했다.


내 아침을 안 먹는 습관은 그렇게 중학교 무렵부터 시작해 결혼 전까지 이어졌다. 요즘식 간헐적 단식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지만, 당시까지는 내내 아침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더 살이 찐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 전까지 마름에 가까운 정상체중이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을 그다지 애달파하진 않았었다. 뭐 시간적 여유가 될 때 잘 먹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결혼 후 유난히 밥을 중요시하는 시댁 덕분에 남편의 아침식사가 중요했고 챙기다 보니 어떻게든 같이 먹기 시작했었다. 아이가 생기고는 더 열심히 아침식사를 챙겼다. 남편과 아이 둘 다 먹는 양이 적어 사실 성가시다는 생각이 종종 듣기도 했다.


그래도 아침을 먹어야지... 시어머니의 생각처럼 꼭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남편도 아침에 뭔가 특히 청소년이라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은 중학생이 되고부터 아침을 안 먹으려 들었다. 내가 아침을 안 먹겠다고 선언한 그즈음이다. 성장기 이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며 어르고 달래 조금씩 먹도록 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밥은 아니어도 계란과 식빵 한 조각이라도 먹여 보내려 애썼다. 그게 지겨워지면 누룽지를 눌여 끓여주기도 하고, 피부가 안 좋아질 때면 양파나 당근을 이용해 수프를 끓여주기도 했다. 워낙 먹는 양이 적은 데다가 입이 짧아 사과반쪽이나 방올토마토 네다섯 개 등 그때그때 계절과일을 이용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된 딸이 나의 어린 시절과 똑같은 말을 한다. 아침에 사소하게 뭔가를 먹고 가면 학교에서 배가 꾸르륵거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거다. 아침에 화장실에 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좋은 거라고 말했지만, 매일 아침 학교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건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인 것도 이해가 간다. 입학한 한 달 동안 몇 차례 비슷한 말을 했지만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나도 되도록 뭐라도 먹여 보내려 했다. 딸이 점점 강경해진다. 아침을 안 먹고 갔더니 하루종일 속이 훨씬 편했고 점심도 훨씬 맛있게 먹었다며 제 나름 이유를 댄다.


그래, 먹는 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신혼시절 남편과 나는 먹는 걸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엔 못 먹어 본 게 많았고, 우린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여유롭게 식도락을 즐기기도 했다. 많이 먹지 않을 뿐, 남편과 나는 참 골고루 여러 가지를 절절한 때에 먹고 즐겼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미국에서 지낼 때는 한국의 토속적인 음식들이 너무 그리워서 한국에 가기만 하면 이것저것 먹어야지 하며 상상의 맛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내가 먹는 걸 별로 안좋인한걸 깨달았을 까? 아니면 내가 변했을까? 막상 와서 먹어보니 그리워했을 때의 맛이 가장 좋은 맛이더라. 먹고 싶은 것, 꼭 먹어야 하는 것들이 줄어드니 식탐이 없어지고 나이 듦에 따라 소식으로 이어지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도 나서부터 많이 먹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14개월 완전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기가 먹는 양이 적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이는 그때도 참 적게 먹고 예민하게 짧게 잤다. 이유식을 하면서부터는 어떻게든 먹는 양을 늘려서 푹 자고 둥글둥글 순한 게 노는 아이를 만들고 싶었지만 몸무게 10킬로그램을 넘기는 게 얼마나 힘들었었는 지를 기억한다. 아이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니더라. 5학년 무렵 뭘 좀 잘 먹는 다 싶게 먹었던 겨울방학을 빼고는 늘 '이게 다 먹은 거야?' 싶게 먹는다. 만3세전까지는 대부분이 갖고 있다는 식욕조절력을 이 아이는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식욕을 조절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과식하는 습관이 더 나쁘단다. 너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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