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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Apr 12. 2024

내 안의 그 아이

나의 에고-  태초의 기억 속 그 우는 아이(1)

40대 엄마와 10대 딸의 다툼을 갱년기와 사춘기의 전쟁이라 이야기한다. 신체적으로 갱년의 삶에 드는 나이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나는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그 아이를 함께 키워 나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잘 보내줬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끈질기게 나타나 내 어린 딸과 싸우려 들었다. 엄마가 어른이면서 아이한테 나를 이해하라 하는 건 내 안의 이해받지 못한 아이 때문이었다. 옛 기억을 꺼내 말하면 그때는 다들 그랬다고 한다. 아픈 옛 기억을 꺼내 말하는 이유는 이제라도 공감을 받고 해결되지 않은 그 아이의 감정을 달래 보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을 받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글을 '엄마도 사춘기' 안의 소 연재가 될 것 같다.)



내겐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내가 1월생이고 겨울이고 내가 걸었던 걸로 봐서 두 돌 무렵 같다. 아침에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었고, 내가 눈을 먹자 아버지가 더럽다며 먹지 말라했다. 나는 뒤돌아 쪼그리고 앉아 플라스틱 공주인형을 눈 위에 세워 놓고 놀았다. 노는 척하다 아버지 눈을 피해 다시 눈을 집어먹었다. 시원하고 바람 맛이 났다. 공주입에 눈을 먹여줬다. 공주가 먹었다. 그래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이다. 공주인형에 눈을 먹였을 때 눈이 녹았을 거다. 나는 그때 인형이 눈을 먹은 줄 알았던 거다. 그리고 '거봐 공주도 먹잖아' 하며 공감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뒤 동생이 있다. 동생과 나는 두 살 차이다. 걸어 다닐 때고 기저귀는 뗀 걸로 봐서 세 살? 24개월은 지났을 무렵이다. 엄마 아빠는 둘 다 일하러 다닌 건 알겠고,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줬는데 할머니는 집 앞 꽃농장에 밭일을 다녔다. 할머니는 잘 놀고 있으라고 하고 가시지만 동생이 운다. 울며 골목을 떠나는 할머니를 따라 뛰어나간다. 나는 문간에서 그런 동생을 바라본다. 나도 울고 싶다. 동생이 더 울어서 할머니가 안 갔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갔다. 동생이 포기하고 나한테 온다. 상처받은 두 어린 생명이 서로 데면데면 바라본다. 동생의 크로 잘생긴 눈이 안쓰러워 보여 내가 눈물을 닦아준다. 얼싸 안아줄 줄도 모르고 그냥 얼굴을 훑어줬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건 내가 이 기억을 곱씹고 곱씹었기 때문일 거다. 눈을 먹는다고 나무라는 아버지는 너무 무서웠다. 아버지는 산처럼 크고 천둥 같은 목소리로 집안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기 일쑤였다. 내가 그걸 언제부터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내 최초의 기억은 그 눈 쌓인 아침이다. 동생은 고집이 세서 지겹게 운다고 어른들이 늘 말했다. 지겹게 고집 센 문제덩어리가 고작 두 살 많은 나한테 맡겨졌다. 억울하고 싫었다.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둘이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노는 방법을 몰랐다. 어른이 놀아주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아이들은 노는 법을 모른다. 어른들이 있을 땐 못했던 짓을 한다.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고, 장롱 안에 들어가 엄마옷냄새를 맡고 그야말로 좁아터진 집안을 어지르며 무료함에 몸부림친다. 내 저지레는 잘 몰라도 동생의 저지레는 보인다. 하지 말라고 하면 동생이 내 말을 들을 리 없으니 쥐어박고 싸운다. 쥐어박는다고 그만둘 리 없으니 치고받고 싸운다.

그게 우리의 유년도 아닌 유아기의 기억이다.


육아를 하며 아이가 울면 패닉에 빠졌다. 나는 동생의 악착같은 울음이 멈추길 기다리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왜 그런지 모른 채 내 모성애가 부족하다 생각해 죄책감이 들었고 우울해졌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게 영아기보다 걷기 시작한 이후 더 힘들었다. 다섯 살의 내가 되살아나 나를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도 손이 떨린다. 골목을 가득 채우던 내 동생의 그 쟁쟁한 울음이 얼굴이 벌게진 그 아이가 떠오른다. 임신했을 때 모성에 관한 책을 읽으며 그 아이가 되살아나 나는 밤새 울었다.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호르몬 때문이라 했다. 그때의 나와 동생 모두 안아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서 밤새 울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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