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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Apr 26. 2024

거저 크는 아이

쉬운 육아는 없다

아이 하나를 돌봐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육아는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어떤 과정의 아이든 쉬운 부분이 없다. 각각의 성장단계별로 아이의 기질+성격마다 특징이 있고 다른 힘듦이 있는 것이지, 거저 크는 아이는 없다. 우당탕당 넘어지고 깨뜨리고 다치는 아이는 양육자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일련의 사고를 치지만 그 양육자는 주위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반면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는 별다른 공감을 받지 못해 더 외롭다. 사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이 조용하게 꾸준하게 관심을 더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는 조용한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그래서 더 억울하다. 00이 같으면 열도 보겠다는 그 말, 그렇게 착한 애를 키우면서 뭐가 힘드냐는 그 말 함부로 떠들지 말아라.


딸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행동이 조심스럽고 무엇이라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래 돌 전까지는 온전히 주 양육자의 몫이라 치자. 주 양육자였던 엄마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면 사회성도 좋다는 그 말을 믿고 18개월을 감수했다. 빈혈로 눈앞이 캄캄해지고 목디스크파열로 팔이 저려도 아이를 앉고 업고 돌봤다. 아이는 돌이 되도록 기지도 않았고, 서지도 않았다. 앉아서 엉덩이를 밀고 다니긴 했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를 불렀다. (말은 잘했다) 돌이 지나고 티브이장식장을 잡고 서기 시작해서 걸으려나보다 했더니 걷지 않는다. 한 발도 떼지 않는다. 그러다 14개월 거짓말처럼 잘 걸었다. 처음 걷기 시작하고도 넘어지지 않았다. 넘어질만하면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를 찾았다. 흔히 하는 말 중 아가들이 걷기 전에 수천번을 넘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애는 '한 번도 안 넘어진 애'다. 이런 조심스러운 기질은 자라면서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아 다행이기도 했다.


20개월 무렵 처음 문화센터에 갔다. 흔히 하는 놀이클래스였는데 50분 수업동안 아이는 내 무릎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무렵, 그제야 어색함이 누그러졌는지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업은 끝났다. 두 번째 수업은 두부를 활용한 수업이었다. 그때도 아이는 내내 엉덩이를 빼고 앉아 있다가 수업이 끝나는 걸, 주무를 수 있는 두부를 가져가는 걸, 아쉬워했다. 그리고 문화센터를 그만뒀다. 오가기도 쉽지 않았는데, 나에게서 잠깐이라도 관심을 돌리려 했던 시도가 더 큰 나의 정신노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하나 키우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게 엄살 같지만, 아이하나 키우는 엄마는 누구나 다 육아초보다.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힘들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내색도 잘 못한다. 가까이 있는 시댁식구들은 이렇게 얌전한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드냐 했었다. 아무도 한 번도 아이를 돌봐주겠다거나 도와주겠다고 안 하는 게 한이 맺힐 지경이었다. 조심스럽고 활동량이 적으니 잘 먹지도 않고 낮잠도 잘 안 잤고 밤잠도 예민했다. 아이의 무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지독히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30개월 무렵 어린이집을 처음 보냈다. 한 달은 울 거라던 선생님들의 말과 달리 두세 달을 내내 울었다. 나중에는 눈물을 삼키며 울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적응시간이 필요한 아이니, 그냥 헤어지는 그 시간이 힘들었던 것 같은데, 내 미안함과 힘듦이 더해져 마음이 무겁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너무 지쳐있던 나는 모질게 등원차에 태우고 죄책감에 쌓였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독점육아라는 말을 쓰던데, 이 말이 참 좋다. 지금도 독박육아라고도 하지만, 내가 아기를 돌보던 당시에도 그렇게 힘들다면서도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독박육아라는 말을 싫어하던 나는 이 말을 처음 듣고 아차 싶었다. 독점육아라니 얼마나 그 시간에 애정이 느껴지던지.....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15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어렸고 아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다짐보다 아이와 놀아주는 게 좋은 육아라는 걸 몰랐다. 사실 지금도 어린아이들과 잘 놀지 못할 것 같다. 길어야 한 시간이나 가능할까? 단순하게 반복되는 어린아이들과의 놀이가 쉽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다. 책 읽기를 잘해주고 싶었지만 석 달 넘게, 6개월 넘게, 어떤 책은 일 년 넘게.... 같은 책을 읽어줘야 하는 것도 숙제 같았다.


사고를 치더라도 뒤에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자기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사고를 치더라도 곧 다시 만날 이 엄마를 좀 잊고 열심히 놀아주길 그렇게 바랐다. 초등 5학년쯤 되니 친구랑 시간을 보낼 때면 엄마가 없어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혼자 잔다.


고1이 된 그 껌딱지는 이제 엄마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한다. 엄마가 뭔가를 알면 알수록 자기의 자유가 줄어드는 느낌인가 보다. 중학교 가서부터 눈에 띄게 자립하는 게 보이더니 이제 함부로 뭘 묻지도 못하겠다. 그래 이렇게 우리는 이제야 서로 적정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 만큼 자랐나 보다. 여전히 나에게 00 이가 힘들게 뭐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민한 아이를 기민하게 살피는 건 사춘기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딸이 혼자 자기 시작한 이후 아이방 문을 벌컥 연 적도 없고, 공부 스케줄을 대신 짜거나 00을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다. 꾸준히 하는 일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피아노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레슨 받으며 중학교 때까지 하자고 권유 했는데 오히려 반항이 심해져 중1에 그만뒀다. 그 이후론 자기 일은 어떻게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주는 정도다. 옮은 계획을 세우거나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만 그만큼 곁을 주지 않는다.


가장 생색 안나는 일이 애 키운 공이라던데.... 더구나 내 애다. 무슨 공치사를 하겠는가? 나 스스로 애쓴 당시의 나를 다독거리고자 주절거려 본 과거사다. 거저 크는 애는 없다. 그러니 남의 육아에 아무 말이나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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